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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치과의 브랜딩 이야기

1. 아빠


딸을 사랑하는 아빠가 있었다. 딸은 이승환의 팬이었다. 마침 고3이었던 딸은 아빠에게 선착순으로 입장하는 콘서트 티겟 예매를 부탁했다. 아빠는 딸을 위해 기꺼이 토요일 아침 새벽같이 콘서트 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저녁에 있을 콘서트 시작 시간까지 딸을 기다려주었다. 딸이 시작 시간에 맞춰 콘서트 장을 찾았을 아빠는 신문지를 머리 위에 뒤집어 쓰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의 짜증도 없는 맑고 깨끗하고 환하고 밝은 얼굴로 딸을 맞아 주었다.


2. 남편


딸은 커서 치과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1년 후배 중 하나인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리고 어쩌면 저 남자와 결혼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밥도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에 걸친 구애 끝에 결국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살면 살수록 이 사람을 선택한 일이 정말 옳은 선택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소중한 것을 얻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 경험은 이후 만나는 사람들과 환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3. 독일


부부는 함께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10년에 걸쳐 병원 빚을 갚았다. 두 사람 다 워낙 집안이 가난했던지라 양가 부모를 다 부양해야 했다. 여느 치과의사처럼 호사와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두 사람은 진료를 끝낸 점심 시간에 도시락을 먹으며 일했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쉼은 곧 삶의 퇴보를 의미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모든 빚을 갚자 두 사람은 기진맥진해졌다. 더는 안되겠다 싶을 무렵 독일행을 결심했다. 거기서 여유있는 삶의 모습을 보고 배웠다. 코로나가 닥치기 전까지 두 사람은 그렇게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4. 치과


쫓기듯 귀국한 두 사람은 교대역 근처에 있는 치과를 인수했다. 큰 고민 없이 인수한 병원이었으나 알고 보니 덤핑 치과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케팅으로 끌어모은 손님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싼 가격으로 진료를 받고 있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후 1년 반 동안 두 사람은 주 6일을 쉴틈 없이 일하며 신뢰를 쌓았다. 다행히 환자들은 두 사람의 진정성과 실력을 알아주었다. 그렇게 폭풍같은 1년 반이 지나고 나서 합리적인 치료 가격을 제안했다. 그러나 환자들은 떠나지 않았다. 그들의 진심과 실력을 믿어주었기 때문이었다.


5. 고아


어느 분주한 토요일 오후였다. 치과 진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던 한 환자가 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나 고아야..." 원장은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한동안 진료를 할 수 없었다. 마취를 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왜 이 손님이 자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써보았다. 공황 장애가 있어서 한 번도 집 밖으로 외출을 하지 않는 환자였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 치과를 방문하는 날은 마치 마실을 나온 사람처럼 행복하게 웃었다. 그렇게 쌓인 신뢰가 환자의 말문을 트이게 했다. 자신의 아픔을 타인에게 꺼내놓을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6. 화상


십대 때 화상을 입은 한 남자가 있었다. 얼굴 전체에 걸친 화마는 모든 치아를 그에게서 앗아갔다. 그는 나이 마흔을 넘어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가질 때까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치과는 이 사람에게 수 개월에 걸쳐 인플란트를 시술해 주었다. 결국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이 가족은 딸들이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고깃집으로 외식을 하러 나갔다. 그동안 딸들은 차마 아빠와 함께 고깃집을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온 가족이 함께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생애에 가장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7. 실력


그렇다고 이 병원을 착한 병원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것처럼 큰 오해도 없다. 이 병원은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한 환자들이 많이 찾는 병원이기도 하다. 재치료에 대한 자신감은 오랜 임상 경험과 끊임없는 자기 수련에서 온다. 그리고 이런 탁월함은 언제나 원장을 지켜보는 직원들의 눈빛에서 온다. 거짓을 말할 수 없는 병원의 문화에서 나온다. 이 병원의 실장님은 거짓을 말하지 않고도 환자들을 대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장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결국 이 탁월함은 '정직'과 '신뢰에 기반한 그들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8. 인생


이 치과는 신뢰와 만족, 정직과 인연을 핵심 가치로 여기는 병원이다. 마치 단단한 치아처럼 항사 그 자리에 머물며 치료가 아닌 치유를 고민하는 놀라운 병원이다. 그런데 세상은 이 병원을 잘 모른다. 굳이 애써 알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병원의 이름은 '내인생치과'이다. 나는 원장님에게 '내인생'이라는 단어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이고 싶냐고 물었다. 원장님은 서슴없이 '소중한'이라는 단어를 말했다. 직원에게도, 환자에게도,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소중한 병원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9. 원석


나는 이 병원의 모든 손님들에게 '내인생'이라는 단어 앞에 붙일 수식어를 물어보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사람마다 자신의 인생 앞에 붙이고 싶은 단어가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겐 아름다운, 누군가에겐 행복한, 누군가에겐 후회없는, 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싶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이렇듯 수천, 수만 가지로 표현될 수 있는 단어들이 '내인생치과'의 핵심가치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세공하는 이의 정성에 따라 얼마든지 더 빛날 수 있는 보석의 원석처럼 말이다. 그리고 내 인생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지를 오래도록 고민했다.


10. 그리고 브랜딩...


브랜딩의 핵심은 차별화다. 또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선명한 컨셉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모든 브랜드가 반드시 꼭 그래야만 할까? 나는 '내인생'이라는 병원 이름 앞에 붙일 빈 칸이 그 가치를 대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빈칸은 이 병원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환자들의 수없이 많은 가치가 대신 채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어느 날 이 병원의 대기실에 나무 한 그루가 심겨진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 ) 안 빈 칸을 채운 환자들의 인생이 나무 한 가득 손글씨로 쓰여지 빼곡히 가지를 채운 장면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이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 병원이 가진 가치가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 병원이 누구보다도 환자들의, 직원들의 그리고 스스로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치과임을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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