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에 한 권, 작심삼책 #01.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는 건
특권일 수도, 불행일 수도 있다.
좋은 기억이라면
책에 대한 감동이 배가될 것이고,
나쁜 기억이라면
좀체 내용에 몰입하지 못할테니.
아니 아예 읽지 않을지도.
'본질의 발견'은
다행히도 후자 쪽이다.
단 한번 있었던 인터뷰의 기억은 강렬하다.
모델을 떠올리는 외모에
철학용어로 가득한 지식이 부드러운 말투를 따라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쉽지 않은 내용임을 깨닫게 된건
회사로 돌아와 녹취를 풀면서였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어렵사리 글을 썼다.
물론 그건 인터뷰이가 아닌
나를 향한 원망이었고.
그런 그가 책을 냈다.
당연스럽게도 '브랜드'에 관한 책이다.
안병민 마케터의 '경영일탈'
홍성태 교수의 '배민다움'에 이어
국내 저자의 책들을 반기는 이유는 단 하나,
물어볼 수 있고 검증할 수 있다는 것.
그 지식들이 실제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기껏 읽고 보면 지난 이야기가 되거나
도무지 검증할 수 없는 해외 서적들에 비하면
주변의 생생한 증언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 책들은
명성만 자자한 다른 책들과 다른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본질의 발견'을 당일에 완독했다.
아마도 몇 번은 더 읽을 듯 싶다.
아니 수시로 꺼내 읽을 듯 싶다.
이론이 아니고 실전이다.
자신만의 관점과 방법론을 상세히 소개한다.
때론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다.
일을 향한 치열함에 숨막히다가도
사람과 브랜드를 향한 따스함에 위로받기도 한다.
나처럼 실제로 브랜딩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쉴새없이 그의 공식?에 자신의 사례를 대입해볼 것이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놀랍게도 유용하고 실제적이란 사실을.
가장 인상깊었던 사례는 역시 '인천항공'
브랜딩이 결국 '문제 해결'의 프로세스이며
보이지 않는 가치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작업이라면
이보다 좋은 국내 사례도 많지 않을 듯 하다.
공항이 가진 서비스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본질'을 평범하지만 비범한 단어에 옮겨내며,
이 단어를 눈에 보이는 로고와
뇌리에 각인되는 슬로건으로 표현해는 과정은
절로 탄성을 지르게 한다.
그게 무언지 궁금하다면 책을 통해
저자의 언어로 직접 들어보라.
짧은 머리의 스타일리시한 남자를 카페에서 만나
새로 나온 소설의 가장 재미있는 한 대목을
조곤조곤 읽어주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그리곤 돌아서서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의 브랜드가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겪어 세상에 나오는지.
컨설턴트란 직업이 왜 말만 번지르한 과시의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다음부턴 하나의 제품 앞에서 이렇게 묻게 될거란 것을.
"그래서 이 브랜드를 만든 진짜 이유는 뭐죠?"
p.s. 아 맞다. 그는 이제 컨설턴트가 아니다.
실제로 브랜드를 만드는 창업자다.
자신의 브랜드는 어떻게 이야기할지 정말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