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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은 흔들려야 한다

나는 예술가들이 가장 본능에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다른 것들은 여간해서는 포기해야 하는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화가들만 해도 그렇다. 우리가 아는 화가들 중 살아 생전 부와 명예를 누린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피카소가 그렇다. 그러나 대부분의 화가들은 평생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살았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고흐다. 그의 그림이 독특한 이유는 정신병을 앓았기 때문이다. 그건 아마다 압센트라는 싼 술을 많이 마신 이유도 있을 것이다. 노랗고 파랗게 이글거리는 그의 화풍은 상상이 아니라 그가 지켜본 세상의 실제 모습이었던 것이다.


여기 '나다운' 삶을 고민하는 한 직장인 엄마가 있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아이가 엄마를 붙잡고 놔주지를 않는다. 그런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직접 데려다주면 회사에 지각할 수밖에 없다. 그때 엄마는 용단을 내린다. 아이가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그래서 아이를 데려다주고 회사엘 가니 팀장이 선뜻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준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맞딱뜨리는 작은 성공(Small Success)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다워지는 순간인 것이다. 나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었고 또한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함께 행복해질 수 있었다. 이렇듯 나다움은 나 혼자 고군분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흐도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이해해주는 착한 동생이 있었다. 동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고흐의 그림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추구하는 가치가 다 다르다. 60세가 넘었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여성 블로그 한 분을 안다. 그분의 블로그엔 하루 1,000명 이상이 방문한다. 그런 할머니 눈에는 자신의 시간과 성공만을 챙기는 엄마들이 마뜩치 않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그 몇 년의 시간에 엄마가 함께 있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엄마들은 너무도 쉽게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내어 준다. 나는 이 두 분을 글을 쓰는 단톡방에서 함께 만나고 있다. 엄마는 회사와 아이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자 한다. 할머니는 때로는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어 엄마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어느 쪽의 생각이 옳은 것일까?


나는 문득 흔들리는 나침반을 떠올렸다. 움직이지 않는 나침반은 고장난 것이다. 나침반은 끝까지 흔들린다. 바늘이 가르키는 정북은 고정된 위치가 아니다. 아이를 양육하는데 있어 어떻게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이와 24시간을 붙어 있어도 불행해지는 아이들이 있다. 엄마가 간호사라 도저히 돌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훌륭하게 자란 사람을 본 적도 있다. 그렇다. 우리는 흔들린다. 20분의 지각 때문에 아이를 붙잡고 우는 엄마들도 있다. 흔들리기 때문이다. 평생을 하나의 목표, 예술을 위해 살아간 화가들도 흔들렸다. 하물며 여러 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우리가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하루를 살아낼 수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이런 흔들림을 인정하는 자세다. 나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용기가 자기다움이다. 그러니 마치 정해진 정북향의 삶이 있는 것처럼 떠드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자. 그러나 순간 순간의 선택의 순간을 만날 때마다 최선의 삶을 선택하자. 적극적으로 흔들리자. 이 말도 듣고 저 말도 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덜 흔들리는 나침반처럼 정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하루 두 장의 그림을 매일 그렸던 피카소와 같은 꾸준함이다. 내 생각이 아니라 실천과 행동이 나를 만들어낸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출근을 해도 괜찮다. 20분 지각해가며 아이와 함께해주는 것은 더 괜찮다. 그 어느 쪽도 당신다운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 당신의 삶을 나는 열렬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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