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평범한 젊은 목회자와 사모가 있었다. 그러나 이 평온한 삶은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로 인해 깨지게 된다. 병명은 뇌종양이었다. 길고 긴 수술을 받은 아이는 부활절에 거짓말처럼 깨어났다. 하지만 아들은 한쪽 눈이 실명하고 여전히 다양한 호르몬제를 먹어야 한다. 엄마는 이 아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매일 아침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엄마는 주변 사람들로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교회 사모이기 때문에 더 그랬으리라. 웃고 다니면 아픈 아들을 두고 웃는다고 뭐라고 했다. 우울한 얼굴을 하면 그래서 아들을 고칠 수 있겠냐고 핀잔을 들었다. 한 번은 아이가 아픈 것이 엄마의 죄 때문이라며 회개해야 아들이 낫는다는 얘기도 들었다. 엄마는 매일매일 흔들렸다. 아이 병 간호 때문에 삼사일을 못자는 날이 흔했다. 좋은 의사를 만나 100일을 꼬박 쉰 후에야 겨우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엄마의 꿈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픈 아이들을 두고 나의 욕심을 차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몸과 마음이 편하면 죄책감을 느낀다. 살아온 날이 기적 같았다. 그래서 평범하고 평온한 시간이 오면 괜히 불안해진다. 몸과 마음을 혹사해야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 아이러니. 그런 가운데서도 나를 찾고 싶은 마음, 나를 브랜딩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스브연에서 만난 어떤 엄마의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것이 있다.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전적으로 희생하는 삶이 과연 맞는 것인가. 아픈 엄마를 둔 엄마의 선한 욕망은 사치일 뿐인가.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은 본능적인 것이다. 아빠보다도 몇 배는 강할 것이다. 그러나 왜 그 짐을 엄마 혼자서 오롯이 져야 하는 것일까. 엄마에게 물어보니 정말로 바라는 것은 외국 유학을 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인지 되물어보고 싶어진다. 그저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은 아닌지...
우리는 '스몰 브랜드'라는 책을 쓰는 공저자로 만났다. 이 모임에는 사업가도, 의사도, 선생님도, 마케터도 있다. 그런 가운데 이 엄마도 스스로를 찾고 싶어하는 간절함으로 이 모임에 합류했다. 엄마는 욕심이 많다. 아이 때문에 시작한 공부로 인해 학위까지 따고 교단에 섰지만 지금은 모든 수업이 사라져 버렸다. 간절하다. 아이도 살고 엄마도 살 방법이 필요하다. 엄마는 그 방법을 브랜드라는 출구를 통해 찾고 싶어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 타인에게 전할 수 있는 가치를 가진 모든 것은 브랜드다. 그렇다면 이 엄마는 세상에 어떤 가치를 전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아이와 가족을 위해 쏟아부은 '사랑'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녀는 우리 모임에 함께 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살려 타인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스브연 운영진에 합류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다.
"아이의 엄마가 아닌 강선아로 살아가야죠!"
조심스런 말이다. 어쩌면 이 엄마에게 아이는 '거의'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는 엄마로서가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아이에게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브랜드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나를 잃어버린 사람은 결코 브랜드로 살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나도 지키고 아이도 지키고 가족도 지킬 수 있을까. 어려운 길이다. 그러나 나는 분명이 그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이 엄마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시간을 통해 '나를 잃어버린' 모든 엄마들의 이야기다. 일을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주체로 살아가는 엄마가 건강한 엄마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가 건강할 수 있다. 엄마가 아닌 그 이름으로 살아야 아이도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렵다. 혼자서 결정하고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스브연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브랜드들을 모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가 나다워지려면 '연대'의 힘이 필요하다. 브랜딩의 핵심인 가치는 타인과의 관계와 소통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기적 같은 삶을 살아왔다. 아이를 기적처럼 살려냈다. 기적처럼 아이를 데리고 미국 여행도 다녀왔다. 어쩌면 함께 살아가는 지금 이 시간이 기적 그 자체인지 모른다. 그러나 엄마에게 자신의 삶이 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엄마는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 내 안의 깊은 욕구를 발견하고 이를 충족해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욕심이 아니다.
엄마는 아직도 고민이 많다. 엄마는 지금도 캐리어를 끌고 전국을 다니며 강연하는 일이 힘들지 않다. 더 힘든 삶에 길들여져서이기도 하고, 어쩌면 이 현실을 벗어나는 나름의 출구라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 엄마에게 브랜딩은 '나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어려운 수학 문제처럼 잘 풀리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더더욱 이 엄마에게 '연대'가, '울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다움은 나 홀로가 아닌,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몰 브랜드 연대'라는 모임을 통해 그 답을 함께 찾아보려 한다.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기회를 모색하려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엄마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놀라운 연결력과 호기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 엄마는 세상 두려운 것이 없다. 아이를 향한 '사랑'이 그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동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내 연결할 것이다. 공존하기 위해서, 그리고 궁극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써내려갈 공저에 기어이 찾아낸 그 길을 반드시 기록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