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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본을 용서해야 하는가?

오해는 마시기 바란다. 나는 이 주제가 정치적인 주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혼란스러운 가치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본을 두둔하면 보수 꼴통처럼 비치고(실상 보수가 뭔지도 모르면서), 북한과 교류해야 한다고 하면 진보 좌파로(진짜 진보도 아니면서) 불리는 지금 이 시대에 과연 이런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축하할 3.1절에 대통령이란 사람이 '화해와 용서'를 갑자기(도 아니지만) 말하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 와중에 주말에 만나 빙수를 먹던 친구까지 이렇게 말하니 그 혼란스러움이 극에 달한 기분이다.


"이제 미래를 위해서라도 일본을 용서해야 하지 않을까?"


순간 머리가 띵하고 어지러워졌다.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데 왜 내가 혼란스럽지? 친구들은 모두 크리스천이니 그런 말을 하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그런데 도무지 마음이 움직이질 않는다. 내가 그렇게도 반일 감정이 투철하게 살아왔던 것일까. 일본 음식도 좋아하고 일본 애니메이션도 좋아하고 심지어 신앙도 일본인 크리스천 때문에 가지게 됐는데 왜 이런 반감이 생기지? 내가 오랫동안 반일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좌파적인 정치색에 물들어선 그런 것일까? 아니면 세상 무식해보이는 대통령이 했던 말이기에 무조건적인 반감이 생긴 것일까? 그런데 이상하게 일본과 용서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내 마음 속에서 섞이지 않는다. 대체 왜 그런 것일까?


일단 냉정을 찾고 가능한한 합리적으로 이 주제를 고민해보기로 했다. 일단 용서는 상대방이 용서를 구할 때 가능한 것이다. 상대방이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용서해버리는 놀라운 장면은 영화 '밀양'에 나온다. 아이를 잃은 엄마는 오랜 신앙 생활 끝에 어렵게 자기 아이를 죽인 사람의 용서를 결심한다. 그런에 이를 어쩌나. 이미 그 사람은 하나님의 용서하심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이야기한다. 여자는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을 저주하며 통곡한다. 그렇다면 일본도 그런 케이스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일본은 과거에 자주 우리에게 용서를 빌었다. 진정성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으나 객관적인 사실은 그랬다. 다만 아베가 집권하면서부터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는 이전 총리들의 정신을 계승한다면서도 우리 법원의 결정에 불복했다. 그리고 또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피해자들 대신에 일방적으로 용서를 선언해버렸다. 이 장면에서 영화 '밀양'이 다시 떠오른다.


문제는 용서 자체가 아니다. 용서의 주체가 아닌 자들이 용서를 말할 때 우리는 혼란스러워진다. 나는 독립 유공자의 자식이 아니다. 만일 내가 일제 시대에에 살았다면 나는 많은 크리스천들처럼 신사 참배를 했을 것이다. 창씨 개명을 했을 것이다. 그게 그 시대의 평범한 대다수 사람들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기울어져가던, 그렇다고 그 존재가 결코 아름답지 않았을 조선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던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이 있다. 그들은 그렇게 단지 '조국'이라는 이유로 전 재산을 바치고 목숨을 바쳤다. 그런데 광복을 맞은 지금은 어떤가. 그때 일본에 빌붙어 아부하고 권력과 재산을 나눠가졌던 자들이 그대로 그 영광을 이어받아 살고 있다. 문제는 그 자들이 '용서'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기득권층이, 그리고 그 일본의 장학금을 받았단 자의 아들인 대통령이 '용서'를 이야기한다. 그러니 내가 화가 나고 혼란스러운 것이다.


만일 내가 그런 독립 운동을 한 사람의 후손이었다면 어땠을까? 당사자가 아니니 용서를 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반인보다는 좀 더 진정성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여러번 용서를 구한 일본과 일본인을 용서해주고 싶다. 신앙 때문에라도 그렇고, 내 양심 때문에라도 그렇다. 좌절과 반목이 가장 가까운 나라와의 진심어린 교류에 방해가 되지 않기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선택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있다. 문제는 그들이 용서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같은 나라 사람으로써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지금의 내가 누리는 번영과 행복의 씨앗이자 디딤돌이 되어주었던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용서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일본이란 나라를 용서하기 힘든 것이다. 아니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모든 혼란의 주범은 대통령이다. 그는 일본과의 화해를 주장할만한 주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가 누린 권력과 영화의 배경에 독립을 위해 헌신한 흔적이 없어서다. 그러니 그는 국민이 뽑은 대표자로서 내가 했던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일본이 아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니까. 이 나라를 지켜낸, 적어도 지키고자 헌신했던 이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으로서의 마땅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친구의 용서와 나라의 용서는 다른 것이다. 그것을 나는 혼동하지 않으려 한다. 일본을 용서할 사람도 있고 하지 않을 사람도 있다. 그러나 친구나 내가 나라를 대표할만한 위치에 서 있다면 적어도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 땅에 태어나 온갖 혜택을 입은 국민으로서 마땅한 자세라고, 적어도 나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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