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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스텝 저자 박요철입니다
Sep 17. 2023
보증금 500, 월세 50에 5평 매장으로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 있다. 바로 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만두가게다. 얼마 전 만난 '64김만두' 대표님은 나이 마흔 일곱에 30억 사기를 당했다고 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만두 가게의 가득한 연기와 줄 선 사람들을 보고 새롭게 사업에 도전했다고 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이 만두가게 때문에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3년 간 운영한 어느 만두가게는 64김만두의 만두를 팔아 경기도에 집을 분양받았다고 한다. 이 작은 가게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일으켜세웠는지, 그리고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또 살려낼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브랜드가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만두가게 사장님이 벤츠를 버리고 스포티지로 갈아탄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과연 수십억 투자를 받은, 유명한, 잘 나가는 스타트업 대표가 외제차를 타도 이런 눈으로 바라볼지는 의문스러운 일이다.
지난 5년 동안 50여 개 가까운 작은 브랜드를 컨설팅이란 명목으로 줄기차게 만나 왔다. 그리고 그에 10배에 달하는 브랜드를 책과 기사와 인터뷰로 만나 그 흔적을 기록했다. '1000개의 스몰 브랜드'라는 연재를 시작한 지도 반 년을 훌쩍 넘었다. 그렇게 나만의 기록으로 남긴 브랜드가 약 200여 개에 달한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이런 '작은' 브랜드에 매력을 느끼는지, 그보다 내가 생각하는 스몰 브랜드란 어떤 브랜드인지에 대해서는 미처 정리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만일 스몰 브랜드를 그 규모만으로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 2022년 부동산을 제외한 실질적인 창업 기업은 무려 111만 개에 달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저 '작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이 브랜드들에 매력을 느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스몰 브랜드'란 어떤 브랜드들일까? 그것은 규모의 작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뚜렷하고 강력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존재감을 가졌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여러가지 면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물리적인 키가 작을 수도 있고, 학벌이, 경력이, 부와 명예가 부족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들 모두가 '다윗'과 같은 승리와 성공과 극복의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시장에서 작은 브랜드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규모;가 작음에도 어마어마한 팬덤을 가진 브랜드들은 또 언제나 있다. 심지어 스스로 성장을 자제하는 브랜드들까지 있다. 한때 이들 브랜드들이 '스몰 자이언츠'란 이름을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장인 정신과 기술력이 뛰어난 일본과 독일에 이런 브랜드들이 특히 많았따.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 등장하는 스몰 브랜드들은 이런 기술 기업들과는 또 다른 특징들을 가진다. 나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다음과 같은 스몰 브랜드의 다섯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1. 선명한 아이덴티티
요즘 핫한 문구 브랜드 '오롤리데이'의 오늘을 만든 건 '박신후'라는 대표 덕분이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대표가 가진 선명한 가치관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박 대표가 이 브랜드를 만든 이유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는 자신의 염원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는 행복은 크고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못난이 3형제가 그려진 노트와 스티커, 다이어리, 그리고 그곳에 기록할 수 있는 작은 일상이 그녀가 생각한 행복들이었다. 이렇듯 성공하는 스몰 브랜드들의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평범하기 그지 없는 참기름 하나를 만들더라도 '양심'이라는 가치를 담았다(정준호참기름). 못생긴 농산물을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어글리어스). 누구나 찍을 수 있을 법한 명함용 증명 사진 한 장에도 개성이라는 가치를 담았다(시현하다). 물론 모든 브랜드가 이런 가치를 지향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랑받는 많은 스몰 브랜드들이 선명한 정체성을 가졌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2. 차별화된 취향
속초에 있는 어느 카페는 두 명 이상의 손님을 받지 않는다. 소란스런 수다도 금지다. 물론 촬영도 안된다. 이 카페는 조용히 사색을 즐기기 위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카페다. 그래서인지 이 브랜드의 인스타그램은 '금지'라는 단어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다 이유가 있다. 서울에서 귀촌한 부부 사장님은 사색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햇볕 잘 드는 카페에서 한 권의 소설을 읽고, 사랑하는 사람과 조용히 담소를 만들 수 있는 카페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 그들에게 북적인 손님과 그로 인한 매출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이 카페를 만든 목적이 달랐으므로 운영하는 방식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존재의 이유와 취향이 명확하니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이 모여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고집스런 개성을 가진 카페와 가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개인의 치관과 취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존중받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흐름의 핵심에 바로 바로 MZ 세대가 있다.
3. 매력적인 스토리
텍스트가 아닌 동영상의 시대라 말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반쪽 자리 지식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스토리였다. 그저 그 스토리를 만들고 전달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사람들은 이야기가 있는 브랜드를 사랑한다. 아기띠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평범한 주부가 코니 아기띠라는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든다. 앞이 보이지 않는 친구를 위해 어느 유학생이 만든 시계는 브래들리 타임피스란 이름으로 수없이 많은 비장애인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해녀 할머니들을 위해 아예 식당을 차린 한예종 출신의 사장님 이야기는 어떤가. 버림받은 유기견들을 입양이 아닌 '데뷔'라는 스토리로 풀어낸 신기한 기획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작은 시작의 이야기는 마치 스노우볼처럼 SNS를 따라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러나 단지 비주얼로 눈길을 끈 가게를 한 번만 간다면, 이렇게 스토리로 성공한 브랜드들은 오래도록 사랑받는다는 특징이 있다. 마치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이야기가 수천 년 넘게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4. 열광적인 팬덤
스몰 브랜드의 강력한 영향력은 다름아닌 '팬덤'에서 온다. 이들 브랜드는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매력적인 페로몬을 발산한다. 그리고 이 페로몬의 모습도 엄청나게 다양하다. 창업자의 철학일 때도 있고, 매력적인 디자인일 때도 있다. 잊을 수 있는 이야기 때문일 때도 있고, 시대의 필요를 읽어내는 안목일 때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어떤 대기업도 따라할 수 없는 팬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왜 '젠틀몬스터'에 열광하는 것일까? 경기도 용인 계속 깊숙한 곳에 숨은 '고기리막국수'에는 어째서 서너 개의 주차장을 지을만큼의 손님들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이들 브랜드가 자기만의 선명한 브랜딩으로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손님들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손님을 이끄는 힘은 절대로 규모와 광고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또 다시 다른 팬들을 불러 모은다. 수년 전 무명 시절의 BTS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5. 시대를 내다보는 안목
성공한 스몰 브랜드들의 특징을 단순하게 정리하고 해석하는 일은 무모한 일인지 모른다. 게다가 살아있는 생명처럼 역동적인 브랜딩의 세계는 영원하지도 않다. 불과 1년 전 유행의 중심에 있었던 브랜드가 지금은 경영난에 허덕인다는 소문을 듣는 일도 드문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순간의 유행이 아닌 트렌드, 어쩌면 시대 정신을 이끄는 작은 브랜드들의 존재는 이런 가벼운 예측을 낯뜨겁게 만든다. 예를 들어 '폴앤폴리나'는 IMF 시절에 벌써 식사빵의 유행을 읽고 가게를 열었다. 그 유행은 오늘날로 이어져 식빵을 만드는 '밀도'와 '코끼리 베이글'에 길을 터주었다. 북유럽풍 디자인의 트렌드를 재해석한 '키티버니포니'는 어떤가. 수많은 카피 브랜드들의 등장에도 여전히 굳건하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순간의 유행이 아닌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오래 가는 디자인에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스몰 브랜드의 등장은 한 순간의 유행이 아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소비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가치와 취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대기업의 제품과 명품 브랜드들은 여전한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10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수없이 많은 스몰 브랜드들이 끊임없이 태어나 우리들의 눈과 귀를 흐뭇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규모의 작음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가진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숨어 있는 '나다움Identity'이라는 본능적인 욕구가 숨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누구나 남과는 다른 삶을 살고자 한다. 가장 나다운 삶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제 우리는 생존을 걱정하지 않는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이미 이루어냈다. 따라서 이제는 개개인의 욕망을 나답게 소비하는 세대가 이 시대의 소비를 이끌고 있다. 이것이 내가 '스몰 브랜드'의 등장과 부흥을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