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의 100년 된 가게 역전회관의 대표는 어느 날 곤란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손님들이 메뉴를 고르느라 10분 이상 난상 토론을 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문을 받기 위해 대기하는 직원도, 주문을 위해 기다리는 다른 손님들도 불편하다. 식당은 시간을 파는 장사다. 이런 이유로 매출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대표는 마음이 타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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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가게 주인은 손님을 원망하는데 그치지 않고 해법을 찾았다. 손님들이 고르기 쉽도록 이른바 '세트 메뉴'를 만든 것이다. 거기에 더해 세트 메뉴를 주문하는 손님들에게 이 가게의 인기 메뉴 중 하나인 선지국을 포함시켰다. 상대적으로 단가가 낮아 큰 부담도 되지 않았다. 그러자 손님들이 너도 나도 이 세트 메뉴를 시키기 시작했다. 고르기도 쉽고 혜택도 분명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 가게는 결국 탐 크루즈가 찾는 '브랜딩된' 가게 되었다.
3.
황부영 교수를 모셨다. 우리나라 마케팅 역사를 꿰뚫는 30년의 업력은 명불허전이었다. 마치 숱한 전쟁을 치루고 살아남은 노병을 만난 듯한 생생함이 있었다. 표현은 거칠었지만 날이 선 검처럼 그 메시지는 살아 있었다. 그러나 수백억 예산의 마케팅을 예사롭게 진행했을 이 분에게 '스몰 브랜드'의 대표들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모신 대표님은 그러나 서두부터 이 부분을 정확히 짚으셨다.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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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의 업력 초기, 자주 찾던 한 맥줏집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하루는 가게가 장사가 안된다며 마케팅 전략을 짜달라는 부탁을 주인이 했다고 했다. 그러자 자신인지 동료인지 모를 한 분이 그 주인에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마케팅은 이런 조그마한 가게를 위해 필요한게 아니에요.' 스몰 브랜드의 대표들이 모인 10월의 초청 강연은 바로 이런 임팩트 있는 한 마디로 시작되었다.
5.
작은 브랜드에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모임을 시작한지 8개월 째에 접어드는 지금도 나는 이 질문을 매우 자주 스스로에게 해본다. 단지 모임을 위한 모임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질문에 황 교수는 규모의 마케팅에 앞서 가장 절실한 '세일즈'를 고민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해법 역시 명쾌했다. 시장이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면 객단가를 높여라(고급화 전략), 그것도 아니면 방문의 빈도수를 높여라. 그리고 앞서 소개한 역전회관은 바로 이 방법으로 100년의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6.
브랜딩은 한 마디로 비즈니스적인 문제(P)를 해결해가는(S)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견기업, 그리고 스몰 브랜드에 주어진 문제는 각각 다르다. 1년에 300억을 쓸 수 있는 대기업과 13억을 끌어모아 마케팅 비용으로 쓸 수 있는 중견 기업, 그리고 500만원의 컨설팅 비용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스몰 브랜드의 마케팅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이 날 황 교수가 던진 해법은 아마도 그런 고민에서 나온 제안일 것이다.
7.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어려운 지식을 쉽게 전달하는 것이다. 달리 그것이 가능한게 아니다. 나는 복잡하고 난해한 지식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하루 하루 생계를 걱정하는 스몰 브랜드들에게도 마케팅과 브랜딩의 지식을 꼭꼭 씹어 전달하고 싶다. 아마도 황부영 교수가 이 작은 모임에 나와 준 것은 그 '진정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셨기 때문이리라.
8.
7시 반에 시작한 강의는 10시 가까이까지 계속되었다. 처음의 수줍은(피곤하셔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목소리가 열강이 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날 것 같이 터져나오는 생생한 현장 강의의 유익은 직접 이곳을 찾은 분들이 누렸을 특권이리라. 글로 옮겨 담을 수 없는, 영상으로 전할 수 없는 후일담들 모두 글로 전할 순 없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아주 작은 동네 맥줏집도, 과일 가게도, 디저트 가게도, 공부방에도 마케팅은 필요하다. 브랜딩은 필요하다. 스브연의 존재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귀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