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을 오래 하다 보면 지칠 때가 있다. 요즘의 스브연이 그렇다. 좋은 강사님을 어렵게 모셔도, 오랜 고민 끝에 프로그램을 준비해도 막상 사람들의 참여가 뜸할 때면 힘이 빠진다. 그럴 때면 가장 중요한 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임을 왜 시작했나. 그리고 그건 결국 모임의 회원들과 직접적이고도 깊은 얘기를 나누는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금동에 있는 과일 가게 사장님을 찾았다.
고즈넉한 과일 가게 안은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원래 목회를 하셨던 사장님은 최근에 구매하셨다는 하만 카돈 스피커 하나를 수줍게 보여주셨다. 고객들이 좋아한다고 하셨다. 그러고보니 두어 시간 이어진 대화를 부드럽게 만든 건 음악의 힘이 컸다. 함께 내온 멜론은 설탕처럼 달았다. 가게 안 한쪽엔 사장님이 평소에 읽으시는 책들이 백여 권 가까이 쌓여 있었다. 그 열심 만큼이나 고민의 깊이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사장님은 근래들어 어려운 개인사를 겪고 계시다고 했다. 스브연을 통해 얻은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실천하지 못한 이유는 그 때문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과일 가게가 그렇게 신나는 일은 아니라고 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한 일일 뿐 그 이상의 재미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얘기는 자연히 사장님이 가장 관심있어하는 이야기로 주제를 옮겨갔다. 사장님은 요즘 황농문 교수의 '몰입'이란 책에 빠져 있노라고 했다. 일과 삶의 어려움을 몰입의 힘으로 이겨내고 계신 듯 했다.
스브연 모임에는 서너 번 참석하셨노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참여하면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눌 시간은 많지 않았다고 하셨다. 차라리 소수가 모이는 와인 모임에서 특정한 주제나 책 얘기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너무 무게 잡지 않고, 거창하지 않고, 비슷한 사람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노라고 했다. 다시 한 번 고객의 눈으로 이 모임의 초심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대단한 솔루션을 기대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런 답을 원한다면 제대로 된 컨설팅을 받는 것이 빠를 거라고 했다. 과일가게 사장님은 일단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고 했다. 무조건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목표는 아니라고 했다. 그보다는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하는 듯 했다. 그것이 꼭 과일가게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해답을, 솔루션을 제공하려 애썼던 최근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과일가게 사장님이 스몰 브랜드 대표들의 전형은 아닐 것이다. 스브연 대표님들이 원하는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항상 답은 고객에게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친다. 가장 열심히, 가장 애정을 가지고 참여하시던 분의 생각도 나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어차피 브랜딩이란 고객들의 니즈를 읽고 그것을 채워가는 일련의 작업이 아니던가. 나는 아직 브랜딩의 기본도 아직 모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조바심 내지 않기로 했다. 그대신 누구나 쉽게 들러서 와인 한 잔 할 수 있는 편한 모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가벼운 주제나 책 한 권을 정해 수다를 떨어볼 작정이다. 그리고 더 많은 스몰 브랜드 대표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이다. 그것이 나라는, 스브연이라는 브랜드를 완성해가는 또 다른 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일 꼭 필요한 모임이라면 또 그 안에 답이 있고 길이 있겠지.
이래서 브랜드는 Why가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자신만의 뚜렷한 핵삼가치를 찾지 못하면 우리는 사업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왜 이 일을 이렇게 열심히, 목숨 걸고 해야 하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게 매출이고 생계면 허탈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수다를 떨 수 있는 모임이면 좋겠다. 크로 화려한 브랜드들 사이에서 스몰 브랜드만의 길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과일 가게를 나오면서 샤인 머스캣과 메론을 한 통 샀다. 가격이 아주 샀다. 사장님이 자신의 과일음 맛있고 싸다고 하셨다. 돌아오는 오후의 햇살이 아주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