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2단계 브랜드 수업, 5강을 마치고...

1.


미대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던 한 학생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미대생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비싸게 인쇄해 클리어파일에 담아 제출하는게 취업을 위한 일반적인 관례였다. 그러나 이 미대생은 자신이 애써 만든 포트폴리오를 좀 더 돋보이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가죽으로 된 파우치를 만들어 포트폴리오와 함께 제출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잘 나가던 모토롤라에 단 한 명의 신입사원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


2.


하지만 이 신입사원은 사업적인 감각이 있었다. 일단 주변 친구들에게 자신이 쓰던 가죽 파우치를 빌려주었다. 놀랍게도 그들 대부분이 취업에 성공했다. 그래서 그는 아예 이를 제품화하기로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취업 시즌이 이어진 다음 해 3월까지 제품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제품의 '핵심가치'를 확인한 그는 주말마다 지방을 다시며 디자인 관련학과 게시판에 제품을 소개하는 포스터를 붙였다. 또 다시 매출이 폭발했다.


3.


그는 오프라인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이번엔 한창 인기 있던 싸이월드에 미대 취업을 위한 온라인 동아리를 개설했다. 거기서 또 한 번의 매출을 일으켰다. 이 모든 경험은 나중에 '크림 하우스'라는 매트리스 브랜드를 사업화하는데 엄청난 자양분이 되었다. 그는 관련 맘 카페를 개설한 후 직영점에서만 제품을 팔았다. 카페에 댓글을 많이 다는 사람들에게는 할인 혜택을 단계적으로 주었다. 알록달록한 매트리스가 대부분인 시장에서 크림색의 이 제품은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




4.


회를 거듭할수록 '12단계 브랜딩 수업'은 참여자들의 경험과 인사이트가 모여 놀라운 시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상하지 못했다. 미리 주어진 교재를 읽어온 우리는 2시간 동안 오로지 단계별 주제에 맞는 이야기에만 집중한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비즈니스를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지혜와 지식,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게 된다. 한 시도 대화가 멈추지 않는다. 비로소 트레바리가 왜 잘 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이런 대화에, 모임에, 수업에 목말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5.


이 날의 수업은 핵심자원과 핵심활동에 관한 수업이었다. 이제 막 공부방을 정리한 대표님께 물어보았다. 자신의 핵심자원은 무엇인 것 같으냐고. 그러자 자신은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고 답했다. 그러나 다른 수업 참가자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 네 번의 수업을 통해 우리는 이 공부방 대표님이 얼마나 아이들과 학부모의 마음을 잘 사로잡았는지에 대해 들은 바 있다. 이 대표님은 온갖 종류의 생수를 사다 놓고 '워터 소믈리에' 게임을 했다. 아이들과 종이 비행기를 접어 대회도 했다. 아이들이 열광한 건 당연했다.


6.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그 경험이 핵심자원이라고 말씀드렸다. 예를 들어 아이들과 함께 한 놀이를 100가지만 정리해서 전자책으로 펀딩을 해보면 어떨까. 전국의 공부방 운영하시는 대표들이 너도나도 사지 않을까. 주말마다 아이들과 뭘 하며 놀아야 할지 모르는 아빠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정보가 되지 않을까. 아예 공부방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이만한 창업 정보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7.


'12단계 브랜드 수업'은 스몰 브랜드가 자가 브랜딩을 할 수 있는 12가지 핵심적인 내용을 가르친다. 교재에는 수십 가지의 관련 사례와 아티클, 핵심요약, 과제까지 주어진다. 그러나 이 모든 내용을 숙지하고 와야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수업 때는 각자의 상황에 맞는 전혀 다른 질문들이 주어진다. 우리는 이런 토론을 통해 서로의 강점과 자원을 발견하고 사업 아이디어들을 나눈다. 그리고 수업 후에 반드시 후기를 남기는데 이 내용이 또 재밌다. 살아 있는 경험들이 고스란히 녹아들이 우리의 사업 의욕을 자극한다.


8.


수업을 마칠 때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내 존재의 이유를 발견한 기분이다. 수업에 참여한 분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숨길 수 없는 흥분이 몰려온다. 크고 화려한 브랜드들 틈에서 고군분투하는 이 분들이 열띤 토론을 통해 새로운 해법을 찾을 때마다 그렇게 기쁠 수 없다. 내게 있어 핵심자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어려운 브랜드에 관한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능력 아닐까. 그리고 그 경험을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작은 재주 아닐까. 나의 쓸모를, 가치를 발견하게 된 이 수업을 죽을 때까지 계속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