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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 3. 브랜드의 핵심가치

부산에 있는 젠픽스라는 회사는 주로 천장재 제작과 시공을 하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창업자는 일을 하고도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이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연 200억 매출의 올리는 회사를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천장재가 관행처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화재가 났을 때 이 플라스틱이 타면서 내뿜는 연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죠. 그는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그리고 세상에 없던 금속으로 된 천정재를 만들게 되죠.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천정재는 무려 1년 이상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집을 꺾지 않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그는 기도를 하며 이 시간을 견뎠습니다. 한편으로는 가공이 어려워 시공을 꺼려하는 업자들 대신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금속 천정재를 선호하는 건물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불만 나지 않는다면 제작이 쉬워 공사 기간을 당길 수 있는 '관행'을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집을 부렸고 이제 시장이 조금씩 반응하고 있는 중입니다. 부산에 있는 경쟁 업체 역시 그와 같은 재질의 천정재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그는 뒤늦게 브랜딩을 공부하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제가 한때 몸담았던 유니타스브랜드의 전집을 구매했다고 했습니다. 걔중 첫 호는 세 번을 정독했다고 하시더군요. 우연히 인터뷰를 통해 만난 이 분을 보았을 때, 그리고 제가 작업에 참여한 이 책을 읽고 계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제 감정은 반가움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한참을 얘기를 듣다 보니 소름 돋는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배운 지식이 현장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놀라움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책을 읽지 않고도, 이론을 섭렵하지 않고도 이미 시장에서는 '브랜딩'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놀랍고도 반가웠습니다.


이 회사의 새로운 명함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1명이라도 더 살린다'. 홈페이지에는 금속 천정재를 씀으로 해서 안전해진 사람들이 숫자로 표기되고 있습니다. 제품을 홍보해야 할 자리에 이런 메시지가 들어가니 직원들부터 들고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 대표는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제품 이상의 '가치'를 전달해야 한다는 브랜딩을 직접 실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플라스틱 천정재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고 현장을 직원들과 함께 조문하기도 했습니다. 그 전날 사장은 직원들에게 문자를 돌렸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조문하기 위해 음주를 위한 모임은 삼가해 달라고 말입니다. '진심'이라는 회사의 가치를 직원들에게 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해박한 이론을 이야기하는 멋진 책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론을 모르면서도 나름의 브랜딩에 성공한 회사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회사를 만날 때마다 일종의 전율을 느낍니다.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제 존재의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3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 내내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우연한 만남의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쓰라는 누군가의 메시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혼자 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기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회사는, 사업은, 브랜드는, 누군가에게 월급과 매출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지닐 때 비로소 지속가능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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