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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의 브랜딩에 대하여...

반가운 일입니다. 크고 화련한 브랜드가 아닌,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의 이야기도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은요. 스몰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제게는 얼마나 더 반가운 일이겠습니까. 이 책의 저자는 '녹기 전에'라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무려 8년이나 되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저는 이 가게의 존재를 전혀 몰랐습니다. '스몰' 브랜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궁금했습니다. 마케팅과 브랜딩에 관한 한 규모가 큰 기업이 압도적으로 유리한게 사실입니다. 수천 만원 하는 신문 광고, 수억 이상이 들어가는 TV광고를 언감생심 작은 브랜드가 어떻게 꿈이나 꾸겠습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잘 나가는 작은 브랜드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그 비밀을 캐내어 성장이 아닌 생존을 걱정하는 다른 작은 브랜드들에게 그 지식과 노하우를 나눠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주문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구요.


하지만 구체적인 마케팅 방법을 고민하는 분이라면 이 책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책은 그냥 아이스크림을 파는 '철학자'의 이야기라고 설명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아요. 이 책은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방법이나 파는 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기분, 태도, 관계, 환대 등의 다소 형이상학적인 얘기로 시종일관 글을 이끌어 갑니다. 저처럼 브랜드의 본질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중간에 덮을 가능성도 꽤 있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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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가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것이 '브랜딩'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좀 더 맛있는, 다양한, 경제적인, 트렌디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방법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8년차 아이스크림 가게의 사장님은 그보다는 사람과 사람이 아이스크림을 매개로 만나는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웅변하는 것 같습니다. 손님을 향한 좋은 태도를 가지고 기분 좋은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끝없이 반복해 얘기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저는 브랜드를 '철학'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할 때가 많습니다. 생존을 위한 매출을 고민하는 사장님들에게 이런 얘기가 얼마나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성공한 작은 브랜드들을 만나보면 그 기저에 항상 그들만의 철학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뭔가 대단한 '한방'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태도와 시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게 얼마나 뜬금없는 소리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것이 진짜 브랜딩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대하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 시간을 대하는 태도가 이 8년 된 아이스크림 가게의 가장 큰 '경쟁력'임을 이 책을 읽으며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장의 매출이 고민인 사장님은 이 책을 읽으면 안됩니다. 홧병이 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진정한 브랜딩을 고민하고 계신 사장님들에게는 강추하고 싶습니다. 브랜딩이란 인간의 욕구와 욕망을 채우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아이스크림 너머에 있는 숨은 니즈를 읽어내는 것, 그것이 이 아이스크림 가게가 8년을 견뎌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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