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스 드리밍 리더스'는 영어 학원 이름이다. 원래는 '애니스 잉글리시'였다고 한다. 후자 쪽이 훨씬 명쾌하지만 상호가 바뀐데는 다 이유가 있다. 30년째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유신애 원장님은 어느 날 영어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한게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중 하나가 아이들의 문해력이었다. 영상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글을 읽고도 이해를 잘 못한다. 게다가 무한 경쟁으로 심각한 불안을 겪고 있다. 그래서 영어 원서 독서를 시작한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꿈꾸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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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과정이 만만치는 않았다. 실례로 이 학원은 초등학생에겐 단어 암기를 시키지 않는다. 효과보다 부작용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이를 불안해했다. 학원을 그만두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유 원장은 뚝심있게 이를 밀이붙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곳 학원에서 영어를 배운 아이들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영어 원서30쪽을 매일 읽으니 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결국엔 학원을 그만 둔 엄마들이 후회하거나 돌아오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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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원의 원생은 50여명, 매출은 1000만원이 조금 안된다. 그러나 고민도 많다. 일단 공부할 아이들이 줄어든다는게 가장 큰 문제다. 최근 아파트 단지가 늘어 당장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5년 후, 10년 후가 문제다. 유 원장은 아이들을 직접 가르칠 기한을 5년 정도로 보고 있다. 그 후에는 실무를 위임하고 미래를 준비할 예정이다. 걔 중 가장 다급한 과제다. 바로 신규 고객의 창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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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던 최규상 대표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새로운 고객 창출은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든다. 하지만 30년 간 쌓인 고객의 DB를 활용해 기존 고객의 재방문을 유도하는게 낫지 않은가 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특히나 지금처럼 구정을 앞둔 시기엔 광고 같지 않은 자연스러운 학원 홍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단순 문자가 아닌 뉴스레터, 온라인 매거진의 발행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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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을 통해 그림을 가르치는 이영지 대표는 메타(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수백 만원의 광고를 실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광고를 하고보니 20대 여성일 줄 알았던 주 고객이 6,70대 시니어 고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 대표는 그림 그리는 도구를 함께 팔고 있다. 또한 미끼? 형태가 될 수 있는 자료를 배포함으로써 새로운 고객을 개발하는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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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스몰 브랜드는 대개의 경우 소개와 입소문을 통해서 매출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광고나 홍보, 채널 관리에는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느 정도까지는 매출을 올리지만 그 이상은 답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작은 회사의 조직 관리를 돕는 임선우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신규 고객 창출과 기존 고객의 재방문 유도, 그 어느 쪽이든 선택과 집중을 해서 매출을 극대화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아마도 비슷한 문제를 만나 고전 중이 스몰 브랜드가 적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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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놀라운 일은 전에 없던 경계성 지능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확실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무분별한 영상 노출과 학업 과정에서의 경쟁이 만든 결과다. 이런 아이들의 치료를 담당하는 강선아 대표는 기존의 아이들이 아닌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독한 영어' 같은 타이틀로 엄만들의 영어 '읽기'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었다. 강렬하고 중의적인 네이밍이 참여자들의 호응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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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ORBC를 하면서 느낀 점 하나는 역시 브랜딩은 문제 해결이자 가치 창출이라는 점이었다. 영어학원이 영어만 잘 가르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애니스 드리밍 리더스'가 30년 이상 동네 학원에서 입지를 다지고 지속가능한 경영을 해온 것은 단순히 영어를 잘 가르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불안과 상처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듬어 주고 영어 읽기를 통해 자신감과 꿈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프렌들리 애니'라는 유 원장의 또 다른 이름이 이를 확인해준다. 친절함이란 핵심가치가 이 학원을 수십 년 동안 이어온 가장 큰 자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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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업은 늘 위험과 도전을 수반한다. 아이들은 줄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유 원장은 생존과 성장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학부모를 위한 간담회를 비롯 성인들을 위한 영어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SNS나 유튜브를 활용한 홍보나 마케팅을 가장 자신없어하기도 했다. 이 부분은 다른 전문가를 초빙한 특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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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영어 학원이 30년 이상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규모 학원은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에게 유리하다. 경쟁을 통해 자존감을 높여주고 면학 분위기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학업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더 큰 불안으로 인해 뇌가 망가지기도 한다. 자존감은 낮아지고 우울은 극대화된다. 유 원장은 그 점을 간파하고 아이들을 살리는 영어 학원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어쩌면 이런 가치의 차별화야말로 스몰 브랜드의 가장 큰 존재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