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이 빵집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본 와이프의 눈에 빵집은 낭만어린 곳이 아니었습니다. 힘들고 고되고 어려운 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친구 부모님이 빵집을 차렸습니다. 하지만 툭하면 결근하고 곤조 부리는 주방장 덕에 일년을 버티지 못하고 망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외식업은 분명 이렇게 만만치 않은 노동의 현장이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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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했습니다. 어르신들이 머리에 피도 안 말랐다고 나무랄만한 젊은 친구들이 외식업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가 막히게 화려한 인테리어와 생각지도 못한 메뉴로 젊은 손님들을 끌어갑니다. 평생 식당을 운영해온 많은 사장님들은 허허 하는 눈빛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저 속도와 저 감각을 어떻게 따라가누 낙망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비밀이 바로 '브랜드'에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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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직접 만나 본 분들부터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고기리막국수는 그야말로 막국수를 만들어 파는 평범한 식당입니다. 그런데 이 가게 안주인의 활약상이 놀랍습니다. 경기도 용인 깊은 계곡에 위치한 막국수 가게를 허영만 선생이 수시로 들르는 맛집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드라마틱한 맛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가게 주변엔 서너 개의 전용 주차장이 있습니다. 도대체 이 집이 왜 잘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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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이상 브랜드를 공부해온 제게는 이 집의 명확한 컨셉이 보입니다. 이 집은 막국수를 팔지 않습니다. 손님들에게 '환대'라는 가치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얘기나고요? 사람들이 굳이 이 먼 데까지 와서 서민의 음식인 국수를 먹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단지 막국수 한 그릇 비우러 온다고 생각하시면 착각입니다. 이 가게는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두 번 이 가게를 방문하면서 그 차이를 명확히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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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들로 분주한 마당을 지나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말끔하고 정갈한 내부가 마치 대가집 안방을 드나드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식탁 사이는 멀어 대화가 방해받지 않고 그마저도 빈 자리가 보일 정도로 여유가 넘칩니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이모님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밝고 목소리도 차분합니다. 머리 위로 숯불이 넘나드는 보통의 맛집과는 다른 낭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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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어떤 기교도 담지 않은 듯 깔끔하고 정갈합니다. 만일 이 식당의 고요한 분위기가 뒷받침 되지 않았다면 그 맛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을 듯 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 가게의 스토리를 알고 이 집을 찾았습니다. 한때는 잘 나가는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부부 사장님의 이야기, 암투병 중인 남편을 데리고 이 외진 곳에 가게를 연 가슴 아픈 사연, 지금은 종업원들을 위해 매일 정성스런 점심을 준비하는 안주인의 이야기는 이 가게의 경쟁력이 단지 맛만은 아님을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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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맛으로만 승부해도 손님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온갖 유료 레시피가 난무하는 지금은 맛 만으로는 손님들을 끌어모을 수 없습니다. 맛 외에 손님들이 굳이 이곳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알려야 합니다. 그건 식당의 인테리어일 수도, 음식의 비주얼일 수도, 훈남 훈녀인 주인일 수도,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스토리일 수도, 외국의 어느 골목을 옮겨 온 듯한 컨셉일 수도, 수십 년을 한결같이 이어온 역사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뭉뚱그려 '브랜드'라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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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식 가르침을 받아 맛과 서비스의 수준을 지키는 것인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만개씩 쏟아지는 맛집 컨텐츠들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는 필살기 하나를 갖추어야 합니다. 앞서 소개한 '고기리막국수'의 이야기는 그 수많은 브랜딩의 방법 중 그저 한 가지일 뿐입니다. 그 비밀이 궁금하신 분은 이 연재 글을 관심을 갖고 읽어봐주십시요. 세상에 얼마나 똑똑한 식당이, 브랜드가 많은지 알면 놀라실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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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란 말 자체가 어렵다면 잊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장사가 '맛'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장님들은 제가 앞으로 써내려갈 글들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어려운 말잔치에 속지 마십시오. 지방 소도시 골목 깊숙한 곳에 위치한 우동 가게의 주인은 제가 아는 최고의 브랜딩을 실천하고 있는 가게입니다. 그렇다고 그 할머니가 가방 끈이 길어서 그런 지식을 쌓았다고는 결코 생각지 않습니다. 생계를 잇기 위한 절실함, 손님을 이해하기 위한 간절함, 내가 가진 필살기가 무엇인지 아는 영민함, 이 세가지만 갖추면 됩니다. 이제는 외식업도 브랜딩이 필요합니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