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식당 하나 하는데도 '브랜딩'이 필요할까요?

1.


장인어른이 빵집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본 와이프의 눈에 빵집은 낭만어린 곳이 아니었습니다. 힘들고 고되고 어려운 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친구 부모님이 빵집을 차렸습니다. 하지만 툭하면 결근하고 곤조 부리는 주방장 덕에 일년을 버티지 못하고 망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외식업은 분명 이렇게 만만치 않은 노동의 현장이었을 뿐입니다.


2.


시대가 변했습니다. 어르신들이 머리에 피도 안 말랐다고 나무랄만한 젊은 친구들이 외식업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가 막히게 화려한 인테리어와 생각지도 못한 메뉴로 젊은 손님들을 끌어갑니다. 평생 식당을 운영해온 많은 사장님들은 허허 하는 눈빛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저 속도와 저 감각을 어떻게 따라가누 낙망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비밀이 바로 '브랜드'에 있다고 믿습니다.


3.


제가 직접 만나 본 분들부터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고기리막국수는 그야말로 막국수를 만들어 파는 평범한 식당입니다. 그런데 이 가게 안주인의 활약상이 놀랍습니다. 경기도 용인 깊은 계곡에 위치한 막국수 가게를 허영만 선생이 수시로 들르는 맛집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드라마틱한 맛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가게 주변엔 서너 개의 전용 주차장이 있습니다. 도대체 이 집이 왜 잘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4.


15년 이상 브랜드를 공부해온 제게는 이 집의 명확한 컨셉이 보입니다. 이 집은 막국수를 팔지 않습니다. 손님들에게 '환대'라는 가치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얘기나고요? 사람들이 굳이 이 먼 데까지 와서 서민의 음식인 국수를 먹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단지 막국수 한 그릇 비우러 온다고 생각하시면 착각입니다. 이 가게는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두 번 이 가게를 방문하면서 그 차이를 명확히 느꼈습니다.


5.


대기자들로 분주한 마당을 지나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말끔하고 정갈한 내부가 마치 대가집 안방을 드나드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식탁 사이는 멀어 대화가 방해받지 않고 그마저도 빈 자리가 보일 정도로 여유가 넘칩니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이모님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밝고 목소리도 차분합니다. 머리 위로 숯불이 넘나드는 보통의 맛집과는 다른 낭만이 있습니다.


6.


음식은 어떤 기교도 담지 않은 듯 깔끔하고 정갈합니다. 만일 이 식당의 고요한 분위기가 뒷받침 되지 않았다면 그 맛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을 듯 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 가게의 스토리를 알고 이 집을 찾았습니다. 한때는 잘 나가는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부부 사장님의 이야기, 암투병 중인 남편을 데리고 이 외진 곳에 가게를 연 가슴 아픈 사연, 지금은 종업원들을 위해 매일 정성스런 점심을 준비하는 안주인의 이야기는 이 가게의 경쟁력이 단지 맛만은 아님을 깨닫게 합니다.



7.


옛날에는 맛으로만 승부해도 손님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온갖 유료 레시피가 난무하는 지금은 맛 만으로는 손님들을 끌어모을 수 없습니다. 맛 외에 손님들이 굳이 이곳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알려야 합니다. 그건 식당의 인테리어일 수도, 음식의 비주얼일 수도, 훈남 훈녀인 주인일 수도,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스토리일 수도, 외국의 어느 골목을 옮겨 온 듯한 컨셉일 수도, 수십 년을 한결같이 이어온 역사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뭉뚱그려 '브랜드'라고 이야기합니다.


8.


백종원식 가르침을 받아 맛과 서비스의 수준을 지키는 것인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만개씩 쏟아지는 맛집 컨텐츠들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는 필살기 하나를 갖추어야 합니다. 앞서 소개한 '고기리막국수'의 이야기는 그 수많은 브랜딩의 방법 중 그저 한 가지일 뿐입니다. 그 비밀이 궁금하신 분은 이 연재 글을 관심을 갖고 읽어봐주십시요. 세상에 얼마나 똑똑한 식당이, 브랜드가 많은지 알면 놀라실테니까요.


9.


브랜드란 말 자체가 어렵다면 잊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장사가 '맛'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장님들은 제가 앞으로 써내려갈 글들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어려운 말잔치에 속지 마십시오. 지방 소도시 골목 깊숙한 곳에 위치한 우동 가게의 주인은 제가 아는 최고의 브랜딩을 실천하고 있는 가게입니다. 그렇다고 그 할머니가 가방 끈이 길어서 그런 지식을 쌓았다고는 결코 생각지 않습니다. 생계를 잇기 위한 절실함, 손님을 이해하기 위한 간절함, 내가 가진 필살기가 무엇인지 아는 영민함, 이 세가지만 갖추면 됩니다. 이제는 외식업도 브랜딩이 필요합니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