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연(스몰 브랜드 연대) 활동 때문에 알게된 동네 과일 가게 사장님이 계시다. 이분은 원래 목회를 하셨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연배인 듯한 이분은 얼굴도 눈빛도 선하다. 누구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기 힘들어 할 것 같은 착한 분이다. 처음엔 과일을 차에 실고 다니며 팔다가 '스위트리'라는 과일가게를 오픈해 운영하고 계신다. 그런데 이 분이 요즘 장사가 잘 안된다고 한다. 경기는 계속 안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마 과일과 같은 간식부터 소비를 줄일 것이다.
2.
설 귀경으로 분당에서 부산으로 오는 길에 와이프에게 물어보았다. 나의 부탁으로 이곳 가게를 한 번 들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T인 아내는 모든 사고가 현실적이다. 그런 아내도 일단 과일 고르는 솜씨에 대해서는 인정을 했다. 다만 그렇게 들이는 노력에 비해 가격이 싼 편이라고 했다. 여느 가게보다는 세밀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서비스로 내준 요구르트만 해도 그랬다. 아내는 백화점에서 팔리는 제품이라면 그걸 강조해야 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고 했다. 그러나 사장님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며 웃어넘겼다고 했다. 아내는 그럴수록 요란하게 알려야 하는게 장사 아닌가 하며 내게 되물었다.
3.
나는 이 과일 가게를 두 번 방문했다. 일단 여느 과일 가게에서 느껴지는 활발함과 생기가 부족했다. 사람들은 단순히 과일만 사러 가게에 들르지 않는다. 굳이 총각네 야채가게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생선 파는 수산 시장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이렇게 과일이나 생물을 취급하는 가게의 펄떡이는 느낌을 기대한다. 백화점의 고급 과일과 다른 동네 과일 가게는 특유의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인의 거칠고 투박한 말투에서 과일의 싱싱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하면 그저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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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조용하고 정갈해도 괜찮다. 하지만 펄떡이는 생선, 신선한 과일 매장은 손님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주 '해녀의 부엌'이란 식당은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 모든 종업의 해녀복을 입는다. 한예종 출신의 대표라 연극도 한다. 그날 잡아올린 해산물을 물질한 해녀가 직접 소개한다. 그러나 스위트리는 조용하다. 목사님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몰라도 교회 분위기가 물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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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스위트리 사장님은 그림을 좋아한다. 그래서 매장 곳곳에 그림이 걸려 있다. 가게 밖에는 자신이 소개하는 싯구를 적어 둔다. 가게 안쪽에는 어마어마한 책이 잔뜩 쌓여 있다. 사장님은 독서 모임이나 와인 모임을 즐겨 한다. 철학적 상상력을 즐긴다. 최근엔 좋은 스피커도 들여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내가 상상한 동네 과일 가게 분위기완 조금 달라 의아한 적이 있었다.
6.
어느 가게든 사람들이 상상하는 전형적인 분위기가 있다고 본다. 일본 라멘집이 그렇고, 해장국 집이 그렇고, 고깃집이 그렇다. 나는 분당 미금역 인근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야채, 과일 가게를 안다. 그곳은 마치 작은 시장 같다. 심지어 고기도 판다. 골판지에 아무렇게나 쓰인 가격표가 널부러져 있다. 깨끗함과 정갈함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곳은 사람들로 항상 미어터진다. 나는 그곳의 부산스러움이 너무 좋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냄새, 생기가 느껴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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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가게는 그 주인장의 포스와 분위기를 따르기 마련이다. 나는 차라리 대표님이 커피를 배워 카페를 했으면 좋겠다. 사람은 변하기 어렵다. 그러니 차라리 업종을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나는 목사님이 동네 카페를 만들어 독서 모임을 했으면 좋겠다. 커피 이름에 좋아하는 작가나 즐겨 읽는 책 이름을 붙엽면 어떨까. 가게 밖에 적어둔 싯구는 카페에 더욱 어울릴 듯 하다. 게다가 조용하고 사람 좋은 아저씨가 내리는 커피는 얼마나 운치 있는가.
8.
나는 동네 과일 가게 하나 살리지 못하는 브랜드 지식은 무용하다고 생각한다. 마케팅이고 브랜딩이고 결국 제품과 서비스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 아닌가. 매출이 인격이란 말이 있다. 팔지 못하는 가게는, 회사는 존재 의미가 없어진다. 다만 마케팅이 좀 더 직접적인 판매에 관한 이야기라면, 브랜딩은 그 가게 자체를 좋아하게는 장기적인 전략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내가 분당에서 부산까지 내려오는 6시간 내내 고민하고 아내와 수다 같은 토론을 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과일 가게 사장님이 장사가 안된다고 고민을 토로해왔기 때문이다.
9.
이곳에 쓴 글은 사실 푸념에 가깝다. 나는 스위트리와 대표님과 이 작은 가게의 생존과 성장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시도해보고 도전해볼 참이다. 그러나 지금은 철저히 소비자의 관점에서 선입견 없이 이 가게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보았다. 실재는 내 생각과 고민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고 싶어서다. 그러나 이 가게에 포스와 에너지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꼭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과일가게 운영이 정말 즐거운지, 신명나는지, 재미있는지, 의미있는지도 여쭤보려고 한다.
10.
모든 지식은 살아 있어야 한다. 현장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해외 사례로 있어보이는 얘기하기는 의외로 쉽다. 멋진 브랜드 이론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기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동네 과일 가게 매출을 올려주는 지식이 아니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치 한강 뷰의 사무실로, 한해 수익 10억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성공 포르노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는 올 한 해 이 과일 가게의 작은 성공들의 기록을 함께 써내려 가고 싶다. 그게 내가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믿기 때문이다.
p.s 추가적인 아이디어
1) 커피 & 후르츠 : 과일이 컨셉인 카페를 열어보면 어떨까. 기존 인테리어 크게 바꾸지 않고 커피만 추가. 자신이 고른 과일 카드로 멤버십을 가입하면 그 과일에 대해서만 10% 추가 할인이 주어짐. 월마다 대표 과일을 선정하고 생일을 맞은 손님에게 할인 혜택을 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