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불안의 시대에 상식적인 성공을 말하는 것에 대하여...


1.


제가 아주 좋아하는 동화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달을 갖고 싶어하는 공주 이야기입니다.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왕은 이 문제를 해결해줄 전문가를 수소문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전문가도 이 문제, 즉 달을 딸에게 선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엔 달이 너무나도 크다는 물리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광대 하나가 이 문제를 아주 간단히 해결합니다. 바로 공주에게 그 크기를 물어본 것입니다. 공주의 답은 명쾌했습니다. 공주는 손가락을 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손가락에 대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바보야, 달은 바로 내 손톱만큼 작아. 보면 모르겠어?"


2.


앞서 쓴 자청과 성공팔이들에 대한 글에 유독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아마 저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분들이 많았나 봅니다. 자청이 쓴 '역행자'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페이스북 글엔 수백개의 좋아요가 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청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일보다 더 관심 있는 일이 있습니다. 아마 저 말고도 자청을 비판하는 글과 영상을 지금보다 더욱 많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달의 크기에 압도된 과학자들의 반응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청과 같은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정확히 이 시대의 사람들이 바라는 '숨어 있는 욕망'을 채워주었기 때문입니다.


3.


간다 마사노리라는 사람이 2002년에 쓴 '비상식적 성공 법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개정판에는 자청의 추천사가 나옵니다. 이 글에서 그는 간다 마사노리의 이 책이 자신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읽기도 전에 덮어버릴 만큼 말이죠. 그런데 이 책이 말하는 비상식적 성공 법칙을 보면 자청의 생각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객에게 부탁하지 않고 압도적인, 고압적인 제안을 한다는 겁니다. 돈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열심히 일하면 부가 따라온다는 '상식적'인 생각을 이 책은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자청이 이런 제안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는 것이죠. 즉 자신이 부자가 아닐 때에도 스스로 부자라고 거짓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거짓된 자기 인식 하에 사람들을 설득하는, 그야말로 비상식적인 생각의 비약이 따랐다는 점입니다.


4.


성공에 대한 상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를 이루는 것은 쉽지 않다. 열심히 자신의 분야에서 정성과 노력을 다해 전문가가 된다. 그 결과 세상이 이 사람을 알아봐주고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의 메시지는 이와 사뭇 다르다는 사실은 수많은 월천, 연십억을 강조하는 광고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나만 따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고생하지 않아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돈 그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 이렇게 '비상직적인' 약속과 제안이 난무합니다. 저는 이것이 지적 다단계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방식이 다단계 사업과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판매하는 제품이 실체가 없다는 것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제안은 성공의 사다리가 끊겼다고 생각하는 많은 젊은이들과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기성 세대의 불안과 결핍을 정확하게 조준하고 있습니다. 쉽고 간단하게 돈을 벌 수 있다는데 누가 이 제안을 거절하겠습니까.


5.


그러나 세상이 상식적으로 말하는 것들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부자는 소수만 존재하기 때문에 부자입니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면 그 '부자'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제품 하나가 십억인 세상에서 월에 모두가 십억씩 번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나 지적 다단계 사업의 세계에선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고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비싼'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게 문제일 뿐입니다. 그래서 수십 만원짜리 PDF(책도 아닌), 천 만원짜리 강의가 팔리는 것입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이런 책을 보고 강의를 들으면서도 스스로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실패의 이유는 이들 성공팔이들의 말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지구 종말을 예언한 다미 선교회의 사람들이 약속한 그 날이 지나도 그 믿음을 버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6.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앞서 달의 크기를 자신있게 이야기하던 공주의 마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동화는 동화일 뿐입니다. 공주가 그렇게 믿는다고 해서 달의 크기가 손톱만큼 작아지는 세상은 오지 않습니다. 성공이 그렇게 쉽게 찾아오는 세상, 부를 그렇게 쉽게 축적할 수 있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주를 설득하지 못하고 진실을 얘기한 과학자들이 절대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청과 간다 마사노리가 얘기하는 세상을 의문과 비판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근거로 제시한 손 쉬운 부와 명예의 세상이 있는지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실체를 눈으로 직접 목도하고 있습니다. (간다 마사노리 역시 그가 책에서 얘기한 것처럼 대단한 자산가인지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7.


그러나 저는 달의 크기를 공주에게 물어본 광대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광대가 공주의 병이 낫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어른이나 과학자의 시선이 아닌 공주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똑같은 마음으로 자청과 같은 사람들에게 열광하는 그 속마음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불안합니다. 외롭습니다. 부와 명예로 가는 사다리는 사라지고 없는 세상입니다. 더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마치 피리 부는 사람을 따라가는 아이들처럼 한강 뷰를 가진 사무실과 비싼 차를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홀리기 쉬운 것입니다. 이 거대한 불안이 성공팔이, 성공 포르노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자청이 사라지고, 신사임당이 사라지고, 장사의 신이 사라져도 그 누군가 이 시장을 대신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8.


그러나 시대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습니다. 이 뜨거운 욕망도 그 실체를 마주하는 어느 순간이 오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문제는 그 빈 시장을 또 다른 거짓 욕망이 차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위해 세상에 '진짜'를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직하고 투명하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출은 작지만 개성 넘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몰 브랜드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의 생각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닌, 자신의 개성과 취향으로 시장을 이끄는 젊은 사업가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믿습니다. 어둠을 밀어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비상식적 성공을 이기는 방법은 상식적 성공의 길을 정직하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청을 따르는 수많은 아류들도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9.


저는 최근 모든 직원을 정직원으로 고용한 작은 헤어샵 대표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모두가 프리랜서로 일하는 현재의 헤어샵 구조가 잦은 이직과 서비스 저하, 고객들의 불만족으로 이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사업의 본질이 교육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을 위한 정기적인 인문학 교육을 함은 물론 모든 직원을 정직원으로 고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2000명에 달하는 멤버십 고객들을 확보함은 물론 더 큰 성장과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도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 자신이 20년 가까이 유명한 헤어샵에서 총괄 본부장으로 일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업 전 무려 1000명의 고객을 인터뷰한 끝에 그들의 가장 큰 불만이 자주 바뀌는 헤어 디자이너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0.


그런 의미에서 저 역시 광대의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가진 문제와불안, 필요와 결핍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정직하고 투명하게 해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버북스'라는 작은 출판사를 만들었고, 글쓰기와 책을 통해 자신과 자신의 회사를 브랜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사례를 세상에 선보이고자 합니다. 달의 크기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과학자의 현실 감각과 공주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한 광대의 상상력을 겸비한 컨설팅과 출판을 겸업하는 것이 2024년을 맞는 저의 소박한 계획이자 꿈입니다. 남을 비판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한계가 있습니다. 이 불안의 시대에 정말 제가 해야할 일은 투명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소박한 부를 이룬 스몰 리치, 스몰 브랜드를 소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제가 이런 '상식적인' 사람과 브랜드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요. 그 모든 과정을 감당할 수 있다면, 어쩌면 저도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작은 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길을 함께 갈 사람과 회사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욕망을 건전하게 채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최근의 '퍼스널 브랜딩' 논란에 대한 짧은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