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어센트 코리아'의 초대를 받아 '리마 살롱 프리미엄'이라는 회사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제가 하는 행사가 아니면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망설였지만 이 회사의 초대는 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지난 해 어센트 코리아의 브랜드북 'See the Unseen'을 함께 작업했었거든요. 클라이언트 이상의 어떤 동지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은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책의 반응도 상당히 좋아 초판이 몇 권 남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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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용 대표님도 멋진 분입니다. 구글의 검색어를 추적해 '리스닝 마인드'라는 솔루션을 만드신 분입니다. 저는 거기에 '허블'이라는 네이밍을 추가했습니다.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어내는 과정이 우주 망원경 허블과 닮았다고 생각했거든요. 고객사도 무척 만족해했고 저도 뿌듯한 네이밍의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대표님을 위시한 이 회사의 직원들 열정이 어마무시합니다.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은 매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시는 대표님을 빼놓고 얘기하기 힘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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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어센트 코리아는 검색어를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여정을 거쳐 구매에 이르게 되는지를 비주얼한 결과로 보여주는 솔루션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하지만 서비스의 특성상 기술 만큼이나 중요한게 인사이트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회사 컨설턴트들의 능력은 기술적 완성도 만큼이나 중요할 수밖에 없죠. 이날 박세용 대표님은 그런 관점에서 일본에서 유명한 책 한 권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이른바 '지명 검색'이라고 해서 TV CF와 검색을 연계해 성공한 사례를 상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두 영역이 철저히 유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더라구요. 재밌고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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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몰 브랜드를 위한 솔루션을 고민하는 제게는 약간의 괴리감을 느낀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많은 작은 브랜드들은 이런 서비스가 있는지도, 알아도 비용 때문에 쉽게 접근하긴 힘들 겁니다. 그리고 이번 행사에서 전문가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는 거의 알아듣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어로 된 전문 용어는 말할 것도 없고 종대(종합 광고 대행사)를 알아들을 분도 많지 않을 거에요. 그래서 질의와 응답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둥둥 떠 있는 섬이 된 기분도 들었습니다. 내용 때문이 아니라 제가 처한 상황의 괴리감 때문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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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즘 가장 가슴에 새기고 있는 말은 지하철 역에서도 나물을 파는 할머니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글을 쓰자, 입니다. 마케팅과 브랜딩이란 용어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훌륭하게 이 역할을 해내는 경험도 정말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이 시장에 어센트 코리아가 만든 '리스닝 마인드' 같은 솔루션은 없는 것 같습니다. 동네 과일 가게, 학원, 개인 병원, 식당은 물론 프리랜서나 1인 기업가들을 위한 마케팅과 브랜딩은 뭔가 산재한 기분이 드는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아무나 '브랜드'를 이야기하고 월천과 같은 성공 팔이 사업가?들이 판을 치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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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인가요. 나름 배우고 유명해지신 분들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스몰 브랜드에 대한 이해가 의심스러운 경우도 많이 봅니다. 그런 곳에서 상처 아닌 상처를 입은 분들도 많이 만납니다. 늘 그 프로그램이 궁금했던 곳들의 대표가 사실상 현실 비즈니스는 전혀 모른다는 놀라운 사실도 전해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쉽고도 확실한 솔루션이나 책을 만들고 싶다는 다짐을 불끈 불끈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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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10년 차 이상의 마케터들이 쓴 '마케터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을 작업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현업의 전문가들이 쓰고 있는 글인만큼 저도 매번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요. 그 중 하나가 '무조건 열심히만' 일하는 사람들의 위험 혹은 번아웃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열일 제치고 자신의 사업에만 골몰하는 수많은 작은 브랜드들을 만나왔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매일매일의 매출이 생존과 직결되는 분들에게 '열심히' 만큼 중요한 명제는 없습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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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은 회사일수록 '스마트'한 마케팅이 필요합니다. 앞서 소개한 원고에는 병원 마케팅을 이제 막 시작한 대표님의 회고가 등장합니다. 이 대표님은 현란한 지식으로 무장한채 상사를 만났다가 '알멩이가 뭔데?'라는 질문을 받게 되죠. 그후로 이 대표님은 기계적으로 하는 PT를 포기하고 오직 하나의 질문, 그래서 그 회사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단 한 가지 생각만 가지고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객사로부터 극찬을 얻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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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님은 일하는 방식에서도 철저히 선택과 집중을 하기 시작합니다. 즉 7시부터 10시까지 중요한 거의 모든 일들을 해치워버리는 방식이죠. 이 방법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벽부터 오전 중에 필요한 모든 글을 쓰고 오후에는 미팅을 하거나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런데 오호라, 이렇게 선택과 집중을 하니 업무 효율은 훨씬 더 높아지더라구요. 수입은 오히려 이전보다 늘었구요. 아울러 비용을 들이더라도 재가 할 수 없는 일은 철저히 외주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새로 시작한 '비버북스'는 이미 서너 분과 함께 일하기로 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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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젠가 어센트 코리아가 스몰 브랜드에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과일 가게 대표님도 동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어떤 과일을 언제 사가는지에 대한 데이터만 있어도 큰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요즘은 샤인 머스캣의 시대가 가고 애플 포도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물론 알려고 노력하려면 알 수 있겠지만 혼자 일하는 과일 가게 대표님에겐 그런 시간도 많지 않을 거에요. 그러나 동네 손님들의 구매 여정을 확인할 수 있다면 작은 가게에 적합한 마케팅 솔루션도 훨씬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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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장은 작은 시장입니다. 돈이 안되기 때문에 컨설팅을 하려는 분들도 많지 않습니다. 그대신 사짜들도 판을 치기 쉬운 시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죠. 그들이 싸게 일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시장에서 신뢰할 수 있는 출판과 컨설팅 일을 하고 싶습니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결과들을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저 혼자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러니 그 자신이 스몰 브랜드이거나, 스몰 브랜드를 돕고 싶거나, 이 시장에 적합한 솔루션을 제시해주실 분을 간절히 찾습니다. 그런 분들은 댓글에 나온 '스몰 브랜드 연대'의 자유 단톡방에 함께해주세요. 이 진심을 이해하시는 분들과 연대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것이 이 시대의 작은 소명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