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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글을 쓰지도, 책을 내지도 못하는 한 가지 이유

1.


글쓰기와 책쓰기에 관한 '부트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12주차 중 겨우 한 주가 지났지만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잘 쓰고 싶어하지만, 책도 내고 싶어하지만 왕초보인 분들이 함께해주셨기 때문이다. 15년 글밥을 먹어온 사람으로써 뿌듯한 보람을 느끼는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왜 이들의 글이 잘 읽히지 않는지 그들의 글을 보면서 곰곰히 생각하고 정리하는 계기가 되어서 기쁘다. 이분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이다.


2.


지금까지 수십 권의 책을 윤문하고, 편집하고, 실제로 저술을 해오면서 느낀 한 가지가 있다. 글을 쓰고 싶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에겐 '글감'이 없다. 즉 실제로 도전하고 좌절하고 경험한 팩트를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들에게 그런 글감들이 없었을리 만무하다. 문제는 그것을 꼼꼼히 기록해둔 사람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글에는 느낌과 다짐과 생각은 있지만 정작 요리를 위해 준비한 사건, 사고 즉 에피소드가 없다.


3.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유려하고 화려하고 멋진 문장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술이나 테크닉이 아니다. 무엇을 경험했으며(에피소드), 그 경험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어냈는지에(메시지) 대한 기록이다. 똑같이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분노와 원망만 쏟아내는 글은 읽히지 않는다. 반면 덤덤하게 사진을 찍듯이 하루하루의 경험을 기록한 글은 힘이 있다. 내가 최근에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브런치 글이 바로 그런 글이다. (이 책은 바로 출간되었다)


4.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글이 아니니 독특함도 없다.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까지 간 사례는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 그 진행과정을 꼼꼼히 기록하면 그것은 아주 유니크한 글감이 된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그 과정이 부부마다 같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자세하게 쓰면 쓸수록 그 글은 더욱 차별화된다. 심지어 이런 글은 굳이 메시지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사건에 대한 각각의 평가는 읽는 독자들이 스스로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5.


반면 이런 경험을 기록하지 못한 사람은 분노와 원망과 다짐의 감정만 풀어 놓는다. 이런 글일수록 스스로에게든, 독자에게든 가르치려드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살면 안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 이런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모에게도 선생님이 해도 듣지 않을 이야기를 굳이 돈 주고 책을 사서 들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6.


그러니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언젠가 나만의 책 한 권을 쓰고 싶다면, 가장 먼저 글감을 모으자. 나의 일터와 일상에서 글감을 찾으려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와 주변을 관찰하게 된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당장 그 일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짧게나마 기록해두면 언젠가 깨닫게 된다. 아, 그때 그 사람이 그래서 그렇게 말했었구나... 그렇게 만들어진 기록은 언젠가 멋진 글감이 된다. 기자들은 이런 글감 창고를 '총알 노트'라 부른다.


7.


20년 간 유머 강사로 일해온 최규상 대표는 어느 날 비행기를 타고가다가 난기류를 만났다. 다른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아우성칠 때 최 대표는 홀로 큰 소리로 웃었다고 한다. 그러자 옆자리에 있던 승객이 왜 웃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최 대표는 '웃으니까 덜 무섭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바로 그 사람이 웃기 시작했고 나머지 승객들도 함께 따라웃으며 비행기 안이 비명이 아닌 웃음소리로 가득찼다고 한다.


8.


나는 이 글을 읽으며 비행기 안에 있었던 일들을 그림 그리듯, 사진 찍듯 머리 속에 재현할 수 있었다. 이윽고 비행이 끝나고 승객들이 한사람 한사람 고맙다고 말하며 비행기를 내리는 장면을 떠올리며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이 분이 왜 20년 이상 유머 강사로 일할 수 있었는지가 너무나도 명쾌해졌다. 아울러 그가 하는 일에 대한 신뢰도 한껏 커졌다. 비로소 남을 웃기는 개그맨들의 유머와 어떻게 다른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9.


모건 하우절이 쓰는 '불변의 법칙'이라는 책에는 워렌 버핏을 만난 한 사람의 이야기 나온다. 한참 불경기이던 시절 이후의 변화를 묻는 그 사람에게 워렌 버핏은 이렇게 되물었다고 한다. "1962년에 가장 잘 팔리던 초콜릿바가 뭔지 아나요?" 모르겠다고 말하자 워렌은 "스니커즈에요"라고 말했다 한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물었다고 한다. "그러면 요즘 가장 많이 팔리는 초콜릿바는 뭘까요?" 다시 모르겠다고 말하자 워렌 버핏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스니커즈'에요.


10.


이 책의 도입부에는 워렌 버핏과 나눈 이 대화 말고는 아무런 메시지가 없다. 적어도 이 글을 쓴 문단에는 어떤 감상도, 교훈도, 메시지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세월이 지나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것들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이다. 그러니 그것이 노트이건 스마트폰이건 무엇이건 나만의 '글감'을 기록하는 일에 공을 들이자. 글을 쓰기 어렵다면 인스타그램에 사진이라도 올리자. 이런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글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자. 글감이 없는 당신에겐 그 어떤 천재적인 편집자나 작가가 붙어도 좋은 책을 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유머 강사 최규상 대표의 글을 소개합니다.

https://blog.naver.com/humorcenter/223384122272


https://brunch.co.kr/brunchbook/divorcewith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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