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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시작하면 알게 되는 몇 가지 것들

1.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가 말했다. 50대 중에 30분 이상 달릴 수 있는 사람이 절반이 채 안된다고. 근거가 있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분은 좋았다. 달리기를 시작한지 두 달째, 1분 달리기로 시작해 지금은 매번 30분 정도는 달릴 수 있는 체력을 길렀다. 컨디션에 따라 힘들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게 느끼고 있다.


2.


달리기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유익은 자신감이다. 워낙에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 때문에 달리기 시작했을 즈음 1,000만원 가까운 잔금을 못받는 일이 생겼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개인 사업자에게는 큰 돈이었다. 당장 와이프는 식당에 알바를 하러 나갔고 나는 조바심 마는 마음을 안고 집 근처 율동 공원을 달렸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걸음씩 달릴 때마다 100원씩 쌓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으로 힘들지만 조금씩 조금씩 달리는 시간과 거리를 늘려갔다.


3.


솔직히 내가 30분 이상을 달리게 될 거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주일 동안 달리다가 다리가 아파서 관둔 기억도 있거니와 한 바퀴가 2km에 정도 되는 율동공원을 보다보면 저걸 두 바퀴 반이나 돌아야 한다는 사실이 아뜩하게 느껴진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 나는 한 바퀴 정도는 웃으며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보다 문득 문득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마치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욕을 회복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4.


얼마 전에는 4수 생활로 힘들어하는 아들이 식당 알바를 시작했다. 본격적인건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 4시간 와이프가 하는 식당 사장님을 돕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우리 아이가 대학에 가는 것보다 그게 무슨 일이 됐든 삶의 의미와 의욕을 발견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기를 간절히 원한다. 배운 것 없어도 식당 하나 잘해 외제차 타고 다니는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나는 아들이 남에게 보이는 스펙보다 더 중요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식당일이면 또 어떤가. 타인에게 먹는 즐거움을 선사하는게 얼마나 귀한 일인데.


5.


달리기를 하다보면 오래도록 달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페이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달리기에서 페이스는 1km를 몇 분에 주파할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나는 대략 6분 30초 정도에 이 거리를 달린다. 걷는 것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다. 그래도 달리기는 걷기보다 힘들기 때문에 막판 10분 정도는 아무 생각없이 달리게 된다. 한발 한발 내딛는 것만으로도 벅찬 시간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내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걸 느끼게 된다. 팔만 저어도 내 발이 움직인다. 그 단계에 오르면 10분 더 달리는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진다.


6.


인생도 마찬가지다. 언제 삶을 마감해야 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인생은 전반적으로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경주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정말 성공한 사람들은 우직하게 끈기있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해나간다. 나이가 들수록 이 '성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대기업에서 만난 30대의 여성 상무가 '농업적 근면성'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것이 바로 성실의 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7.


나는 내 발로 걸을  수 있는 한 계속 달리고 싶다. 7km로 시작해 10km, 하프 마라톤에도 도전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풀코스 완주도 해보고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살아간다는 것과 달린다는 것이 닮았기 때문이다. 고작 30분만 달려도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인생이란 기본적으로 고통의 연속이지만, 또 그렇기에 이런 작은 도전이 주는 성취감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살아있음' 그 자체에 감사하게 된다.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8.


나는 아이들에게 나이가 들어서도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땀에 흥건히 젖은채 아이들을 만나면 말 없이도 소중한 삶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나이 든 아빠도 달리는데 너희들도 잘할 수 있단다. 4수, 5수, 6수를 하면 어떠니. 대학을 못가면 어떠니. 그냥 달리듯이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이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데 무엇인들 못하겠니. 그건 판검사나 대통령도 모르는 삶의 기쁨일거야.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 그냥 달리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 발의 물집이 사라지면 또 달리려고 한다. 늘 그래왔다는 것처럼 묵묵히, 삶이 언제나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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