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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불 같이 화 내는 주방장을 달래는 법

어느 식당 홀 매니저의 고군분투 운영 이야기 #06.

1.


얼마 전 중식당에서 홀과 주방 사이의 다툼으로 칼부림까지 한 사건이 있었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이 둘의 사이가 좋은 경우는 많지 않다. 와이프가 잠깐 일했던 부대찌개 집도 그랬다. 환갑이 지난 남편과 50대 후반의 부인이 함께 운영하는 가게였는데 면접 보는 날 부인이 와이프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른건 다 좋은데 저희 남편이 불같이 화낼 때가 있어요. 그것만 좀 이해해주세요.' 아무튼 그렇게 하루 4시간 점심만 돕는 알바가 시작됐다.


2.


일단 와이프는 주방에서 일하는 남편 사장이 언제 화를 내는지 패턴을 살폈다. 딱 두 가지 경우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음식을 냈는데도 홀에서 받아가지 않을 때였다. 분주한 홀에서 손님들이 먹고 간 테이블을 치우다 보면 종종 음식을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와이프는 일단 주방의 음식부터 받았다. 또 한 가지 경우는 주문이 엉킬 때였다. 이 부분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주방의 욕구불만이 해소되자 부대찌개집 사장이 불같이 화를 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3.


그런데 홀 매니저로 자리를 옮긴 순두부 가게 빡빡이 셰프는 화를 내는 이유도 달랐고 빈도도 잦았다. 빡빡이 셰프는 특지 자신이 미는 메뉴를 홀에서 챙겨주지 않는 경우에 민감했다. 그런 메뉴 중 하나가 뼈대해장국전골이었는데 일이 바쁜 홀의 누구도 그 메뉴를 홍보해주지 않았다. 와이프는 당장 알파문구에 가서 매직 펜으로 홍보 포스터를 만들어 이 메뉴를 적극 홍보했다. 그러자 전혀 팔리지 않던 4만원 짜리 이 메뉴가 하루에 하나씩은 꼭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빡빡이 셰프가 흥분하는 경우가 한 가지 더 있었다.


4.


와이프는 손님들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 순부에 김을 추가로 서비스했다. 문제는 가끔씩 이 김을 두 세번씩 리필해가는 경우가 있다는 거였다. 그때마다 빡빡이 셰프는 거품을 물고 화를 냈다. 민망한 손님이 다시 식당을 찾을리 만무했다. 와이프는 그 원인이 무언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최근 몇 배나 오른 김의 원초 가격 때문임을 알았다. 그 날로 와이프는 테이블마다 원초 가격 상승으로 김의 리필이 어렵다는 안내 문구를 붙였다. (이 작업은 내가 도왔다) 그날 이후로 리플을 요구하는 손님은 딱 두 명 있었다. 안내 문구를 미처 보지 못한 사람, 어떻게 안되겠냐며 정말로 미안해하는 두 번의 경우였다.


5.


얘기를 들어보면 쉽고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뜨거운 불과 김이 오가는 주방과 분주한 홀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상이라도 부리는 손님을 만나면 식당 분위기는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부가 함께 일을 해도 남편이 화내는 이유를 모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식당 운영은 사람, 즉 주방과 홀과 손님들의 감정을 헤아리고 숨은 욕구를 채워주는 과정이다. 이것은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사람의 욕구를 채운다'는 브랜딩의 정의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6.


나는 식당업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의 가치를 알고 일했으면 좋겠다. 그저 생계를 잇기 위해 죽지 못해 일한다고 하면 그 일은 언제고 힘든 일이 된다. 끝내고 나서 기울일 한 잔 술에 목을 메게 된다. 하지만 주방과 홀과 손님들의 숨은 욕구를 이해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일종의 미션처럼 일해보면 어떨까. 그러면 같은 일을 해도 그 보람과 만족도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몇 개월의 알바 생활과 딱 한 달의 홀 생활을 통해서 와이프는 식당 운영을 넘어선 비즈니스와 브랜딩을 스스로 학습하고 있다. 과연 이 가게는 달라질 수 있을까? 달라진다면 어떤 변화를 맞을까. 매일 매일 흥미롭게 와이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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