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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 식당은 무엇이 다를까? (1)

1.


송파에 있는 '64김만두'의 대표는 40대 유통업에 뛰어들었다가 30억을 날렸다. 6개월간 두문불출 방안에 누워만 있는 박윤정 대표를 남편이 집밖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그날의 산책길에서 운명처럼 뜨거운 김으로 가득한 만두가게를 만났다. 박 대표는 만두가게 앞에 선 사람들의 긴 줄 앞에서 비로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처럼 뜨겁고 신나는 인생을 다시 한 번 살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


2.


'역전식당'의 김도영 대표는 100년 된 식당을 운영하는 남편이 일할 때만 해도 행복했다. 식당일은 신경도 쓰지 않고 브런치를 먹고 개인 운동 레슨을 받으며 전형적인 강남 아줌마의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식당이 철거된다는 소식, 남편이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동시에 듣게 됐다. 그러자 아들이 김 대표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식당을 물려받고 싶으니 군대를 다녀올 동안 식당을 유지해달라는 부탁이었다.


3.


식당 일은 고되다. 성공한 식당의 미담 치고 휴일을 제대로 쉬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여행은 언감생심이다. 하루라도 문을 닫으면 혹이라도 단골이 떠날까 외식업 사장님들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일한다. 그렇게 돈을 벌고 빌딩을 올려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몇 년을 일하다보면 건강은 나빠지고 삶은 피폐해진다. 그리고 이때 식당은 또 한 번의 변신을 강요받는다. 하던 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10년을 더 일할 이유를 찾을 것인가...


4.


자본주의 사회에서 '멈춤'은 곧 추락을 의미한다. 그것은 날아가는 로켓과 같다. 식당이 1년 365일 문을 닫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관성대로만 일하면 우리는 목적지를 잃어버린다. 그래서 오래가는 식당들은 나름의 '일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64김만두의 박 대표는 그것의 '삶의 이유'였다. 역전식당의 김 대표에게는 그것이 '아들의 부탁'이었다.




5.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서 저자는 이런 삶의 이유가 있는 사람이 나치의 포로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도 우리에게는 지금의 직장을, 식당을, 가게를, 학원을 이어가야만 할 이유가 필요하다. 물론 이런 고민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매출을 보장받을 때에만 가능한 호사스런 고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어떤 자영업자들도 이런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리는 반드시 한 번은 이 지긋지긋한 생업을 이어갈 이유에 대해 자신에게서든 타인에게서든 질문을 받게 된다.


6.


세상의 수많은 성공한 브랜드들 역시 이런 질문을 맞딱뜨리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 '펭귄북스'는 당시 당연시 여겨져졌던 비싼 양장본의 책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왜 책이 그렇게 무겁고 비싸야만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담배 한 값의 가격으로도 살 수 있는 문고판 책을 만들었다. 본죽은 왜 아플 때만 죽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죽의 고급화를 이뤄냈다. 꼭 죽음 앞에서 철학적 질문을 던져야만 좋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도 오래 가는 식당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자신만의 질문을 가진 식당은 훨씬 더 오래 사람들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다.


7.


"오래가는 생명력을 지닌 식당을 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 생명력이라는 것은 본질에 다가갈수록 강해지겠지요. 맛의 근본에 이를수록,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닿을수록, 어떤 큰 위기가 닥쳐도 손님들의 귀한 선택을 받으리라 믿습니다.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 언제 들어도 좋은, 오래도록 사랑받는 음악처럼요."


8.


고기리막국수를 운영하는 김윤정 대표의 말이다. 만일 이런 고집이 없었다면 암에 걸린 남편과 함께 찾은 계속 깊숙한 조그만 식당에서 지금의 성공을 일굴 수 있었을까? 줄 서는 식당 몽탄은 분점이나 가맹점을 내지 않는다.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밤 9시가 되면 반드시 문을 닫는다. 대전의 명물로 손꼽히는 제과점 ‘성심당’ 역시 절대 대전 이외의 지역으로 지점을 늘리지 않는다. 매장을 늘리고 영업시간을 연장하면 좀 더 많은 매출을 낼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9.


한 매체와의 인터뷰 중 “왜 가맹 사업을 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몽탄의 조준모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돈을 더 빨리 벌 수 있으니까 그러고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희소성 차원에서, 롱런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그러지 않는 거죠.”


10.


오래가는 식당은 나름의 고집이 있다. 섣부른 성공을 위해 서둘러 거위의 배를 가르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선택 뒤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것이 지역 사회에 대한 애정이든, 브랜딩을 위한 차별화를 위한 전략적 판단이든 중요한 것은 '나름의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나름의 이유가 없는 식당은 세상의 트렌드와 욕심과 비판에 쉽게 휘둘린다. 그리고 작은 위기에도 쉽게 쓰러지고, 그래서 사라지고 만다.


11.


겨울이 오고 있다. IMF 못지 않은 불황의 기운이 자영업 전체를 휘감고 있다. 성장이 아닌 당장의 생존이 절박한 가게들이, 식당들이, 학원들이 자꾸만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1%의 가게들은, 식당들은, 학원들은 사람들에게서 더욱 사랑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업을 이어가는 선명한 이유'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만두가게의 뜨거운 김 앞에서 삶의 이유를 찾았던, 아들의 간절한 부탁 앞에서 재창업의 이유를 찾았던 두 대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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