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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런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걸리버가 파도에 휩쓸려 소인국 해안에 다다랐을 때 걸리버보다 더 놀라고 두려웠던 것은 아마 소인국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요? 똑같은 눈, 코, 입, 그리고 손과 발을 가진 사람이 이토록 거대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런 걸리버가 얼마든지 우리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엄청나게 위협적으로 느껴졌을게 분명합니다. 그런 소인국 사람들이 걸리버의 세계에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 안의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생존을 위협하는 장애물일 겁니다. 머리 위를 오가는 거대한 발들과 달려오는 자동차 바퀴들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비마저도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의심케 할 것들이 분명합니다. 


스몰 브랜드가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스몰 브랜드들에게 시장의 모든 상황과 변수들은 모두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롱런하는 브랜드들에게서 넘지 못할 한계처럼 보이는 것들이 많을수록 오히려 그만큼 더 큰 혁신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자원이 부족하지 않았다면 고민하지 않았을 일들, 인력이 좀 더 있었다면 떠올리지 않았을 방법들, ‘작은’ 우리에게 시장이 좀 더 관대했다면 세우지 않았을 전략들이 각 브랜드들의 차별성을 만들었고 경쟁력을 키웠습니다. 한계를 알았기 때문에 혁신의 단초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죠.


“불특정 다수를 위한 베스트셀러는 바라지 않습니다. 한 달에 3~4권 이상 책을 읽는 ‘헤비 리더’들을 주 타깃층으로 잡아요. 헤비 리더들은 아주 전문적인 콘텐츠를 원해요. 주제를 쪼개고 또 쪼개서 세분화해 ‘이 분야에선 이 책이 원톱’이라고 알립니다. 해당 내용을 원하는 독자들이 알아서 찾아올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죠.”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는 카테고리별로 출판사 순위를 매깁니다. 이를 통해 한 분야에서 책을 꾸준히 내서 그 분야의 책을 찾을 수 있죠. 유유 출판사는 책읽기, 글쓰기 카테고리에서 1위입니다. 독자의 공부를 돕는 책을 내려고 보니, 공부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활동이 ‘읽기’와 ‘쓰기’였습니다. 이 분야에 집중하여 책을 기획, 출간했더니 어느새 이 분야에서 스테디셀러 여러 종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김정선, 유유, 2016)을 선두로 『쓰기의 말들』(은유, 유유, 2016) 등 읽기와 쓰기를 돕는 책들이 그 주인공입니다. 스몰 브랜드는 이렇게 시장을 쪼갬으로서 생존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몰 브랜드는 언제까지 이런 틈새 시장만을 노려야 하는 것일까요?


어떤 이들은 우선 매출을 늘리고 단기적으로 이익을 충분히 얻어 중소기업이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해결한 다음에, 즉 규모를 충분히 키워 대기업으로 성장한 다음에 고민해도 되는 문제가 브랜드가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양적인 성장이 항상 중소기업에 닥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끔은 ‘기업은 성장하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말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성장’의 의미가 잘못 해석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로버트 토마스코는 《거대 기업의 종말》에서 잘못된 성장의 해석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목적에 맞는 전진, 롱런 브랜드의 시작


“사업에서 성장이란 개념은 팽창과 혼동되기 쉽다. 성장하는 기업들은 흔히 부산물, 상관물, 또는 성장의 징후로 팽창을 경험한다. 하지만 성장의 자리를 팽창이 차지하게 되면 수단과 목적은 혼동을 일으킨다. 규모, 사업영역, 그리고 수익성의 증가는 전진 운동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전진을 부추기지는 않는다. 팽창 그 자체는 결코 영구적 목적이 될 수 없다. 오직 팽창만 추구하는 것은 유기체로 보자면 위 확대증이나 암과 동일하며 기업 세계에서 보자면 엔론, 타이코, 그리고 월드콤과 동일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추구해야 할 성장은 팽창이 아니라 목적에 맞는 전진입니다. 생존을 위한 다양한 선택들이 결과적으로 브랜드로서 전진할 수 있는 차별성과 자기다움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유유출판사가 틈새 전략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브랜드의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브랜드가 추구해야 할 바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이런 출판사 중에는 지방에서 창업을 해서 나름의 브랜딩에 성공한 출판사 ‘남해의봄날’도 있습니다. 이 출판사의 정은영 대표는 출판사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유명 작가나 명사보다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이웃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저희가 지금껏 내온 책의 주인공들도 그런 분들이고, 앞으로도 진정성 있는 분들과 더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스펙 쌓기와 취업난에 지친 청년들, 대도시의 삶이 답답해진 지식노동자, 진정성 있는 삶을 꿈꾸는 분, 아님, 그저 통영이나 남해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좋겠네요.”


항상 등장하여 식상하긴 하지만, 성경에서 다윗은 작은 물맷돌 5개로 거인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그 상황에 비유하자면 중소기업(다윗)에게 골리앗이 꼭 대기업이 되란 법은 없습니다. 골리앗은 대기업일 수도 있고, 때아닌 재난일 수도 있고, 지난 IMF 경제난 같은 시장의 어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든 무기로서 ‘브랜드’는 물맷돌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다윗의 물맷돌이 그랬듯 물맷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것에 담긴 신뢰와 믿음이 중요합니다. 역사가 증명하듯, 꼭 풍부한 자원과 자본만이 시장에서 성공하고 존경받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처럼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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