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내 삶의 속도를 찾아서, 달리면서 배운 또 한 가지

1.


난생 첫 마라톤 대회를 완주했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이었다. 대략 500미터 정도, 두 어번 걷고 말았기 때문이다. 친구와 함께 그 원인을 연구했는데 가장 유력한 것은 초반 스퍼트다. 평소와 달리 수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 뛰면서 초반 내 속도보다 빠르게 뛰었다. 그 바람에 쉽게 지쳐서 제 속도를 내지 못한 것이다.


2.


집으로 돌아와 여러 유튜브를 보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전문가들이 천천히 뛰기를 권한다는 것을 알았다. 천천히 바른 자세로 뛰어야 오래 뛸 수 있고, 그래야 산소통이 커져서 더 빨리 뛸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게다가 몇몇 사람은 마라톤에서도 속도와 순위로 경쟁하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달리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과 건강이니까 말이다.


3.


대회를 마친 그 다음 날 나는 배운 것을 바로 실험했다. 나의 평균 페이스는 보통 1km를 7분 중반대에 뛰는 것이다.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속도다. 하지만 초반에는 6분대로 뛰었었는데 그 날은 초반부터 아주 느리게 7분대로 뛰었다. 그 결과 놀랍게도 40여분, 5.4km를 뛰는데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아니 지치지 않았다. 뭔가 큰 깨달음을 얻는 기분이었다.


4.


나는 어쩌면 인생도, 비즈니스도 그 사람들만의 속도가 따로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비교와 경쟁,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우리들은 이런 이런 이유로 내 삶의 속도를 잃곤 한다. 남들보다 더 많이, 더 빠른 성공을 지향한다. 그리고 쉽게 지치고 때로는 번아웃을 경험한다. 그러나 인생은 길다. 마라톤보다도 더 길다. 그래서 내 삶의 속도를 발견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5.


조금 더 천천히 살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진짜 성공한 브랜드를 오래가는 브랜드다. 나는 10년 후에 노티드 도넛보다 성심당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될거라 생각한다. 빠른 성공은 빠른 쇠퇴를 불러온다. 최근의 성심당 기사 때문이 아니다. 성심당은 그보다 오래 전부터 오히려 성장을 지양하는 전략을 택했다. 대전이 아니면 팔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문에 더 오래 사랑받는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



6.


최근 외식업 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짜 성공한 분들은 '롱런하는 식당'을 운영하는 분들이라는 것이다. 요즘 젊은 외식업자들은 빠르고 성공하고 빠지는 핫 브랜드 전략을 택한다. 그래서 SNS를 통해서 빠르게 입소문에 오르는데 전력을 다한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또한 빠른 망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진정한 외식업의 고수들은 10년, 20년 가는 식당을 지향한다. 그래서 매일 먹을 수 있는 일상의 메뉴를 선호한다.


7.


그렇다면 오래 가는 식당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들의 속도에 맞는 경영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당들은 방송에 소개되는걸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 빠른 성공이 오히려 서비스의 저하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크라이치즈버거'는 수요미식회의 출연 제안을 거절했다.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 결과 출연한 다른 서너 개의 브랜드 중 두어 개는 수요미식회에 나온 이후 오히려 문을 닫았다고 한다.




8.


나는 평생 달리고 싶다. 공공연히 10km, 하프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곤 했지만 전략을 바꿨다. 8분대의 페이스로 50분, 1시간을 달리는 목표를 새로 세웠다. 어제는 대회 다음날임에도 불구하고 40분을 쉬지 않고 뛰었다. 이 페이스가 딱 좋았다.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도 있고 대화도 가능한 속도다. 그런데 누군가 나의 느린 달리기 속도를 보고 바로 내 옆에서 스퍼트를 한다. 자신의 아내에게 빨리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듯이. 나는 무시하고 그 옆을 내 속도대로 달렸다. 난생 처음 1.8km의 율동 공원 세 바퀴를 뛰었다.


9.


내 삶의 속도는 무엇일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느린 속도일 것이라 확신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성공에 대한 조급한 갈증을 느낄 때가 있다. 지금보다 딱 두 배만 더 벌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하지만 마음이 급할수록 눈 앞의 일을 놓치게 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내 앞의 일을 확실하게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인생의 경치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가족과 친구,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내 삶의 속도다.


10.


내게 달리기를 가르친 친구는 이제 골프를 배우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기타를 배우고 싶다. 홀로 일하는 시간들 중간 중간 김광석의 노래를 조용히 부르고 싶다. 알아보니 근처 '전설의 기타' 학원에서 월 14만원에 초보 과정 수강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골프도 배우고 싶다. 친구들과 더 많이 더 자주 어울리기 위해서. 그래서 가능하다면 둘 다 배우고 싶다. 천천히, 내 삶의 속도대로. 이런 깨달음을 준 두 달 간의 달리기에 깊이 감사할 따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 첫 마라톤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