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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브랜드는 무엇으로 사는가?

1.


"Small Scale, Strong Spirit, Smart Solution"


13년 전, 스몰 브랜드를 주제로 브랜드 전문지의 특집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부제가 위와 같았다. 크기는 작지만 나름의 철학과 스마트한 솔루션을 가진 기업들을 찾아 인터뷰를 했다. 다시 그 특집 기사를 보니 절반 정도의 브랜드가 아직도 그때의 모습을 지키거나 성장해 있었다. 걔중 폼텍, 두닷, SGP는 다른 에디터가 글을 썼고, 나는 보리출판사와 씽크와이즈에 관한 기사를 썼다. 다행히 내가 선택한 브랜드들은 그 영역에서 선한 영향력을 여전히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스몰 브랜드의 대표들과 함께 같은 주제의 책을 여러 권 준비 중에 있다.


2.


예를 들어 용인에 있는 한 영어 학원에서 30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원장님을 만났다. 이 브랜드의 핵심 키워드는 한 마디로 '시스템'이다. 그렇다고 고도의 시험과 평가 제도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학원은 초등학생들에게 영어 단어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영어로 된 글을 읽는 즐거움을 가르친다. 그렇게 해서 입시 준비가 될까 싶지만 배우는 즐거움과 심리적 안정감을 얻은 아이들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오히려 성적이 뛰었다. 입시에 대한 불안 때문에 학원을 떠났던 학부모들이 돌아와 지금은 두세 분의 선생님과 함께 학원을 유지하고 있다.


3.


그렇다면 이 학원이 말하는 시스템이란 무엇일까? 이 학원은 영어라는 타국어를 즐겁게 익힐 수 있는 자체적인 노트를 새로 개발했다. 노션을 통해서 아이들의 학습 이해도와 성장 과정을 학부모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대부분의 소규모 영어 학원들은 주먹구구식으로 과외하듯 학원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30년 간 지속가능한 학원 운영을 해온 원장님에게는 영어 교육의 본질인 즐거운 학습을 위한 도구가 절실했고 이를 구체화하는 다양한 솔루션들을 개발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 방법들은 인근의 작은 학원들에게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 이 학원의 원장님이 가장 고민하고 있는 바는 이러한 솔루션을 다른 원장님에게 제대로 정확하게 물려주는 일이다.


4.


마트에 판촉 사원을 파견하는 회사의 대표님 역시 30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이 회사의 대표가 가장 신경 쓰는 대목은 직원들에게 '일의 격'을 설파하는 일이다. 매장에서 제품을 파는 일은 요즘의 MZ 세대가 가장 기피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20년 전 이 회사의 대표는 '드림팀'을 만들어 외국계 브랜드 제품의 판매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킨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의 뒤에는 판촉일을 하찮게 여기는 시장의 편견, 회사 내의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야 하는 아픔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이겨낸 결과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의 제품들을 10년, 20년씩 꾸준히 판매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 회사의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판촉 지원들의 '자존감'이다. 스스로 대우받고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했다.


5.


반면 제조업을 하며 성장 가도를 달리는 스몰 브랜드의 대표도 만났다. 이 회사는 전기차 충전기를 판매하며 이미 매출 100억을 넘어섰다. 물론 매출로만 보자면 아직은 스몰 브랜드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 회사의 대표가 지금 고민하는 것은 성장과 내실을 다지는 갈림길에서의 올바른 선택이다. '스몰 자이언츠'를 쓴 보 벌링엄은 이러한 선택의 과정에서 어떤 가치 판단을 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금도처럼 여겨지는 성장 일변도의 전략이 전부가 아님을 주장한다. 오히려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성장을 제한하는 회사들의 선택도 보여준다. 이 브랜드의 대표 역시 지속가능과 성장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이 선택이 회사 운영의 많은 것을 결정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6.


나는 이러한 스몰 브랜드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취재를 진행하면서 작은 규모(Small Scale)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철학(Strong Spirit)과 해법(Smart Solution)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렇다. 내가 말하는 스몰 브랜드는 그저 막 시작한, 성장 단계에 있는 규모의 문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는 어떤 햄버거 브랜드는 '수요 미식회'라는 강력한 홍보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연을 고사한 경우가 있었다. 그 결과 다른 세 개의 햄버거 브랜드가 방송에 출연할 수 있었고, 그 가운데 두 개의 브랜드는 그 홍보 때문에 자신만의 성장 페이스를 잃고 쓸쓸히 시장에서 퇴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 무조건적인 성장만이 회사 경영의 유일한 답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스타트업들이 '엑시트'만을 목표로 달리다가 고꾸라지는가 말이다.


7.


그래서 고루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스몰 브랜드에도 '철학(Strong Spirit)'이 필요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마트에서 판촉을 하면서도 '업의 격'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대표는 말한다. 판촉은 예술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 대표에게서 교육받은 직원들은 심지어 스님에게 샴푸를 팔기도 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일한 만큼의 성과와 보람을 얻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좋은 생각만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성공하는 작은 학원들을 살펴보면 자신들만의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엄청난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본다. 앞서 소개한 영어 학원은 자체적으로 제작한 학습 노트 1,000부를 주변 학원에까지 완판하는 결과를 만들기도 했다. 한 개인의 성장 노하우가 학원의 솔루션으로까지 발전한 케이스다. 이런 브랜드가 결국 생존을 넘어 지속 가능한 단계로까지 나아간다.


8.


누누히 말하지만 스몰 브랜드가 가진 규모의 소소함을 생각의 작음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하지만 연매출 100억 이상을 하는 식당의 대표들이 좋은 차를 타며 여생을 즐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주먹구구식으로 경영한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큰 착각이다. 이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연구하고 고민하며 공부하는지를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빅 브랜드는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목표가 아니지 않은가. 그 기업의 임원을 지낸 사람들도 결국은 나와서 자신의 업을 해야만 한다. 스몰 브랜드의 시작인 셈이다. 그런데도 이런 대기업 출신의 창업자들은 스몰 브랜드를 무시한다. 배우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곧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시스템이 완비된 기업에서 일하는 것과 모든 일을 창업자 혼자 처리해야 하는 스몰 브랜드 대표들의 역량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말이다.


9.


그러니 회사의 크기가 작다고,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브랜드라도 무턱대고 무시해선 안된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지를 깨닫고 겸손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가 1인 기업으로 출판사를 만들고 이미 예닐곱 권의 스몰 브랜드에 관한 책을 준비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이들 브랜드의 성장과 성공을 곁에서 지켜보며 묘한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 불과 몇 퍼센트에 불과한 인서울 대학을 나오는 것이 인생의 성공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 상위 1%에 들어가는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해서 우리 인생이 바뀌지 않음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수면 위에 들어나지 않은 100억, 200억 매출을 하는 스몰 브랜드의 대표들에게는 얼마나 배울 것이 많은지 모른다. 개인 기업이라면 10억 대의 매출을 하는 이들도 자신만의 철학과 솔루션이 분명한 경우를 자주 본다. 그리고 나 자신 역시 그런 작지만 강한(small but strong) 스몰 브랜드로 남은 삶을 살아가고 싶다.


10.


자본주의 시장에서 학습한 우리는 작음을 두려워한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스타벅스 매장에서 small 사이즈가 있음에도 메뉴판에 적지 않는다고 들었다. 성장이 곧 미덕인 미국 사회에선 충분히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을 만들어온 그런 민족이다. 나라 자체가 작음으로 인해 더 노력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민족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로컬을 포함한 스몰 브랜드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다. 개성과 취향을 중시하는 MZ를 비롯한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스몰 브랜드를 사랑하고 선택하고 향유할 것이다. 내가 할 일은 그런 스몰 브랜드의 시대가 좀 더 빨리, 확실하게 도래하도록 그런 브랜드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이다.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글쓰는 능력'을 주신 신께 감사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 일이 너무도 보람되고 즐겁다. 부디 그런 강력한 스몰 브랜드를 더 많이 찾고 기록하고 전파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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