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스텝 스케치 #08.
매주 불금의 여유로운 저녁,
혹은 토요일의 느지막한 아침 시간이 되면
나는 한 주동안 쓴 '세줄 일기'를 꺼내어 다시 읽는다.
때로는 1년 전에 쓴 노트를 꺼내 다시 읽기도 한다.
그 시간이 조금씩 쌓여가면서
타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만나는 기록 속의 나는
그러니까 한 주 전, 혹은 1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같기도 했지만 다르기도 했다.
놀라운 변화같은건 많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내용들을 엑셀로 옮겨 적어 보았다.
과연 나는 무엇에 그렇게 끌렸으며,
무엇에 그렇게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나를 움직이는 그 힘의 비밀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1년여 간의 세줄일기 내용 중
반복되는 내용들을 노트에 옮겨 적어보니
대략 다음과 같은 리스트가 나왔다.
그런데 결과가 내겐 조금 뜻밖이었다.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나는
사람 만나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친한 친구와 약속을 해놓고도
당일에 핑계를 댄 후 나가지 않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누군가와 함께 일한다는 것 자체가 피곤하고 어려운 일이었으며
혼자 몰입해서 일하기를 훨씬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만남과 소통, 교감있는 대화에서
가장 큰 삶의 에너지를 얻고 있었다니...
또 한 가지 놀랐던 점은
부지불식간에 가족들을 대한 나의 태도였다.
세줄쓰기의 솔직한 기록은
일년에 무려 스물 다섯번이나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낼만큼
나의 진짜 모습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평소엔 조용하고 얌전한 스타일이지만
어느 임계점을 넘으면 무섭게 화를 내는 나를 모르지 않았지만
한 달에 두어 번은 꼬박꼬박 그랬었다니.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나도몰랐던, 혹은 외면하고 싶었던
'진짜 나'의 모습이었다.
어느 날 친한 회사 동료가
'비폭력 대화'라는 세미나를 다녀온 후
자신이 배운 내용을 상세히 설명해준 적이 있었다.
건강한 대화법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인간의 숨은 '욕구'를 다룬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다.
그때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 나는
동료가 전해준 '욕구 리스트' 카드를 앞에 두고
내가 쓴 세줄일기를 그들의 언어로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다음 과 같은 몇 가지 키워드를 뽑을 수 있었다.
'마음의 여유'와 '삶의 질서'가 중요하고
'새로운 발견과 자극'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기를 즐기며
'삶의 의미와 보람'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
그리고 '소통과 도전'을 통해서
살아갈 '용기'를 얻는 사람,
나는 바로 그런 욕구들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 후로 나는 내가 힘을 얻는 이 단어들을 노트 맨 앞에 두고
그에 맞는 '스몰스텝'들을 추가해가기 시작했다.
'마음의 여유'와 '평안'을 얻기 위해
하루 10분 일찍 일어나 책을 읽었고,
그 내용을 카톡을 통해 지인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1장의 성경을 읽고,
하루 30분씩 산책을 시작했다.
산책을 하며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듣고
좋아하는 노래들을 틈틈히 듣기 시작한 이유도
바로 이 즈음에서부터였다.
매일 아침 관심 키워드로 기사를 검색해 저장하고
좋아하는 칼럼니스트의 글을 필사하는 것은
'새로운 발견과 자극'을 주었기 때문이다.
TED 동영상을 통해 세상의 앞선 생각에 귀기울이고,
수백 개의 다큐리스트를 만드는 이유는
이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루 10분의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나의 관심사와 생각을 사람들과 나누고 '소통'하는 일은
큰 힘이 되어주었다.
매번 강의를 앞두고 전전긍긍하면서도
'자기발견'과 '브랜딩'이란 주제로 강의를 계속해오는 이유도
그 자체가 내게 '도전'이자 '용기'이며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가능한 한 매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23개의 스몰스텝은
나의 일상은 물론 삶 전체를 이끄는 에너지가 되어주었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따라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
나는 '삶의 질서'가 중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어질러진 책상이나 집안을 치우며 새 힘을 얻고,
내가 하는 일에 압도되거나 부담을 느끼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미리미리 준비하려고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내 삶은 조금씩 '질서'를 만들어가기 시작하고
'마음의 여유와 평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과정을 통해 '용기'를 얻고
당장의 삶에 안주하는 게으름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그 도전과 성취가 주는 기쁨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뛰어나거나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의 중년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는 내 삶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려 애쓰기 때문에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물려줄 재산도 없다)
다만 내가 애써 지키고자 했던
삶의 방식만큼은 물려주고 싶다.
적어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따라 살려했다는
그 사실만큼은 전해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짜 성공과 행복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는 오늘도 23개의 '스몰스텝'을 다시 반복한다.
알아주는 이도 없고 대단치 않은 발걸음이지만
결국엔 내가 지향하는 그곳으로 데려다줄 작은 스텝,
일상의 작은 반복이 만들어내는 가치있는 삶으로 말이다.
“당신의 삶을 살아라.
그러면 당신의 자녀가,
또 그 자녀의 자녀가,
당신은 굉장히 멋진 가치의 상징이었으며,
동시에 당신이 그 가치대로 살았다고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