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알려주고픈, 어른의 공부

1.


아들은 4수생입니다. 매번 떨어진 건 아니고 더 좋은 학교를 욕심 내다보니 어느새 3번의 실패를 맛보게 되었네요. 그런 아들이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이전에 와이프가 알바로 일했던 바로 그 부대찌개 식당입니다. 어느 날 와이프가 군대 간 아들 면회하듯이 몰래 사진을 찍어 올렸는데 마음이 짠했습니다. 집에선 라면을 끓여먹은 후 포장지조차도 안 치우던 애였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식당 주인에게 칭찬을 듣고 있다고 합니다. 일을 잘해서는 아니고요, 어쨌든 열심히 성실히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하다고 하시네요.


2.


얼마 전 20년은 족히 되었을 옛날 사진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앳된 모습 속에서 지금 아들의 표정을 읽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저는 그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모든 일이 부담스럽고 모든 관계가 어려웠습니다. 자칫 순해 보이지만 주눅 든 모습이 역력하더군요. 마치 아들이 식당에서 빗자루질부터 배우듯 사회 생활의 쓴 맛을 매일 경험하던 때였습니다. 우울증에 공황장애, 공황발작까지 겹쳐서 사실 위태위태하던 시기였어요. 적어도 그때의 저는 그랬습니다. 아마 아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요?


3.


그러전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진짜 어른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성적이나 진학이 목적이 아닌 삶 자체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재밌습니다. 새벽마다 일어나 제가 일하는 분야의 책들을 섭렵합니다. 그렇게 배운 지식들을 유튜브와 페이스북, 브런치 등에 실시간으로 옮겨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들이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 전날 설레기까지 합니다. 내가 써야 할 글들, 만나야 할 사람, 마무리지어야 할 프로젝트가 그렇게 부담스럽지만은 않습니다. 모든 결과가 최상은 아니지만 저는 이 파도 타기를 즐길 정도의 여유는 가지게 되었습니다.


4.


식당 주인의 말에 의하면 아들의 첫 비질을 보고 기가 찼다고 합니다. 집에서 얼마나 곱게 곱게 컸는지가 한 눈에 보였을 겁니다. 부대찌개 주인 사장님도 대기업에서 온갖 직원들을 다 겪어보고 키워본 사람이니 얼마나 한심하고 또 안쓰러웠을까요. 그런데 그런 아들이 제대로 된 비질을 배우고 식당의 궂은 일을 배우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그렇게 번 돈 30만원을 뿌듯하게 자랑하더군요. 물론 아들은 비질보다, 설거지보다, 포스기 사용법보다 더 어려운 '인생'을 배워야 할 겁니다. 많이 자빠질 것이고 아프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아들도 저처럼 50이 되어 옛일을 추억할 날이 올겁니다.


5.


지난 주엔 12주 동안의 글쓰기 수업을 마쳤습니다. 사정상 빠진 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완주를 하셨습니다. 걔중 몇 분은 정말 좋은 글, 기획안을 완성하셨어요. 고작 석달이지만 저는 그 수업 시간을 매주 기다렸습니다. 제가 먼저 배우고 그걸 나눠주는 기쁨과 보람을 즐겼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책은 살아온 만큼 읽히는 것이라고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온 만큼, 경험한 만큼, 느낀 만큼 쓸 수 있습니다. 이런 글쓰기 레이스에선 상처 입은만큼 더 보석같은 글을 쓰게 마련입니다. 금수저나 은수저는 쓸 수 없는 글을 흙수저는 쓸 수 있어요. 이게 이 바닥의 룰이란 것을 저는 이 12주 동안의 수업을 통해 또렷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6.


저도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글쓰기에서, 달리기에서, 그리고 제가 하는 브랜드를 통해서 인생을 배웁니다. 자꾸만 잔소리를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브런치에 꼰대 같은 글을 쏟아내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배움은 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절대 잔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하지 않을겁니다. 배움은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게 아니거든요. 최고의 교육은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인생이 살만한 것임을, 비질을 통해서도 우리는 성장할 수 있음을, 좌절과 어려움이 자산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그 날까지 견뎌내는게 인생이라고, 아들에게 말하지 않고 보여주고 싶습니다.


7.


저는 지금 카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6월의 따스한 햇살 사이로 간간히 들이치는 바람을 맞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글쓰기란 도구를 통해 제 인생을, 제 일을 다듬을 수 있는 기술을 얻었다는게 행복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제 생각을 남들에게 무리없이 전달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실은 모두 다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글쓰기는, 달리기는, 브랜드는 제 삶의 곳곳에 연결되어 살아있는 어른의 공부로 이어집니다. 아, 이 배움을 우리 아들은 언제쯤 깨닫고 배울 수 있을까요. 대신 쓸 수도, 대신 달릴 수도, 대신 일해줄 수도 없기에 저는 이 글을 씁니다. 조금은 더 나은 어른의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런 간절함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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