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앞에서...

며칠 전 일이다. 딸이 내게 일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재수 중인 딸이 당장의 대학 진학보다 내가 하는 일을 배우고 싶다고 한 것이다. 물론 딸과 여러 대화를 나눈 것은 사실이다. 대학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는게 중요하다, 욕망보다 불안이 크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함께 스카를 다니고, 같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면서 분명 딸의 심경에 어떤 변화가 생긴 듯 하다.



솔직히 나도 딸이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남들처럼 대학 가고, 연애도 하고, 직장도 다니고... 그런데 친구 좋아하고 무던한 줄로만 알았던 딸이 심각한 불안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나는 당장의 대학 진학보다 딸의 행복을 간절히 원했다. 무얼 좋아하는지, 어디서 행복을 느끼는지, 어떻게 하면 자기답게 살 수 있는지를 찾아가길 바랬다. 그런데 그 방법이 내가 하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내 일이 좋다.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경험과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옮기는 일이 너무 행복하다. 그 과정은 험난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그 일을 딸과 함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딸은 미술에 재능이 있다. 글을 이만큼 꼼꼼히 읽고 고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한 줄도 허투로 넘겨 읽지 않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내 일을 돕겠다고 한다. 과연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게 지혜로운 선택일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딸이 자기 길을 찾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도 없다.



나는 최근에 대기업 출신의 어느 작가가 쓰는 '생애재정표'라는 원고를 다듬고 있는 중이다. 자신과 가족의 인생 전체를 엑셀표로 정리하고 관리하는 분이다. 이분의 말에 딸에 따르면 1년에 900만 원 정도는 과세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한달에 70만원씩 30년을 모으면 복리로 16억의 자신이 된다고 한다. 나는 딸에게 말했다. 내가 줄 월급 중에 70만원을 이런 방식으로 불려볼 의사가 있는지. 딸이 매우 큰 호기심을 보인다. 나이 50에 자산 16억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학교도, 직장도, 결혼도 어쩌면 나이 50에 재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한 도구이자 방법론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길을 꼭 남이 정해준 길을 따라서 갈 필요도 없지 않을까?



나는 딸과 제3의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나이 50이 되어 바라보니 철이 든 후 내 삶은 그저 '따라하기 급급한' 삶 그 자체였다. 남이 가니 대학도 가고, 남이 하니 취업도 했다. 남이 하니 당연히 결혼도 해야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딸에게는 꼭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선택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언제나 커다란 위험이 동반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아빠가 함께 하면 조금은 더 안전하고 확실한 제 3의 지름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 길 앞에 나와 딸이 함께 하고 있다. 부디 이 길이 딸의 행복으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p.s. 대학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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