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마음

3월 31일은 아들 생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고 싶은 걸 말하라고 호기롭게 한 마디 한게 화근이 될 줄은 몰랐네요. 처음에 1000만원 짜리 기타 사진을 가족 단톡방에 올렸을 땐 서로 농담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올라온 330만원짜리 중고 기타는 그렇지 않더군요. 나름 진지하게 왜 필요한지를 말하고 있더라구요. 150만원짜리 통기타 사준 지가 채 두어 달이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순간 아빠를 뭘로 아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화가 났습니다. 요즘 말로 호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달까요.


애꿎은 와이프한테 화풀이를 했습니댜. 애들이 300만원을 너무 쉽게 말한다고 말이죠. 일거리를 싸들고 하루 종일 카페를 전전하며 일하다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즐겁게 먹고 떠들고 있는데도 마음이 편치가 않은 겁니다. 물론 친구들에게도 이미 단톡방을 통해 이 일을 얘기했었습니다. 그러자 1000명의 원생이 다니는 수학 학원 원장을 하는 친구가 15만원짜리 나이키를 왜 사줄 수 없는지 한 달 동안 설명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런데도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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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친구들과 웃고 떠들다가 집으로 돌아가니 아들이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서 아들이 보내준 중고 기타 링크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습니다. 영롱한 기타 사진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판매자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어느새 어디서 거래할지에 관한 것으로 내용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 기타가 그렇게 좋아? 입시에 도움이 돼?"


사실 아들은 4년 채 80만원짜리 일렉 기타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그 기타로 대학에 합격하기도 했구요. 문득 생각해보니 아들이 뭘 사달라고 한 적이 거의 없다는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런데 나의 이 질문에 아들의 눈이 거의 두 배는 커져 있었습니다. 내일 함께 가서 보고 결정하자고 했더니 절을 두 번?이나 하더군요. 뭔가를 쉽게 쉽게 얻는 것이 좋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저도 이 상황에서 슬며시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득 두 번째 대학을 가겠다고 소주를 사들고 갔던 저의 과거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아버지 표정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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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마음이란게 이렇습니다. 온갖 논리와 이성적인 판단으로 설명할 수 없는 판단을 할 때가 많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아들 이기는 부모 없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 이유일 겁니다. 때로는 그런 여린 마음이 자식들을 망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거구요.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다시 한 번 이 고민을 얘기했을 때 친구들은 모두 '사주라'고 얘기했습니다. 꿈이 그쪽이니 해주라고, 시원하게 마지막으로 해주라고... 이런 아빠의 마음을 아마 아이들은 오랫동안 모를 겁니다. 자신들이 자식을 낳고 키우기까지는요. 그래서 저는 아끼던 맥미니와 노트북을 당근에 내놓았습니다. 빨리 팔려야 출혈이 덜할텐데요. 그래도 마음은 훨씬 편해졌습니다. 그날 아들과 아내의 웃음 소리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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