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강연을 다녀왔습니다. 극동방송 라디오 PD인 목사님이 저를 다시 불러주셨네요. 이번엔 라디오가 아니라 실제 교회 예배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 좀 특이합니다. 일단 건물이 따로 없이 카페 공간에서 진행됩니다. 예배 순서도 여타의 교회와 완전히 다르더군요. 익숙한 기도와 찬양, 헌금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목사님은 면티를 입고 예배를 인도합니다. 예배 끝나니까 바로 집에 가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성도들을 앞서 보내고 목사님과 라멘을 먹고 커피를 마셨습니다. 저는 교회 강연 서두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교회가 다 있군요" 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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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얘기를 듣고 보니 그럴만도 했습니다. 일단 이 교회 목사님은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셨던 분입니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에 진심이셨어요. 목사님은 좋은 이야기란 '개연성과 불확실성'을 동시에 갖고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십니다. 즉 예측 불가한 반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맥락이 이해되어야 한다는 얘기였어요. 스탠드업 코미디는 수없이 많은 빌드업 과정과 그것을 한 번에 터뜨리는 펀치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저는 이 모든 이야기가 속속 이해되었습니다. 제가 오늘한 강연한 '스몰 스텝'도 100여 번의 경험을 통해 그런 구성 요소를 나름 만들어놓고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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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스토리라인을 가장 잘 갖춘 책 중에 하나가 바로 성경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예를 들어 '탕자의 비유' 이야기는 불확실성과 개연성을 동시에 갖춘 놀라운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자기 몫의 재산을 탕진한 둘째 아들은 당연히 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잔치를 베풀죠. 분명 예측과는 다른 전개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게 개연성이죠. 그런데 더 놀라운건 첫째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자기 몫의 재산을 달라는 첫째에게 아버지는 전혀 엉뚱한 얘기를 하죠(나머지 이야기는 직접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읽히는건 단순히 교세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수천 년을 견뎌온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한 보고(寶庫)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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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업 코미디 출신의 이 목사님의 교회는 여러 개의 교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각각의 교회가 이런 방식으로 자유롭게 운영되고 있지만 대표 목사님은 따로 계시다고 하시더군요. 바로 성경이 말하는 '복음'을 불확실성과 개연성을 가진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겁니다. 놀라운건 이 교회의 대표 목사님이 극동방송 이사장님의 아드님이라는 겁니다. 극동방송은 기독교 방송국 중에서도 정말 보수적인 곳 중의 하나거든요. 그런데도 이런 교회가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있다는게 정말 놀랍더군요. 이 자체로 반전이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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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교회와 목사님들, 그들의 사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너무 예측가능하면서도 개연성 없는 설교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이런 교회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렇게 다양한, 작은 교회들이 늘어나면 보수적인 기독교도 자연스럽게 자연 정화되고 진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지만 건강한 교회의 저변이 넓어지면 지금처럼 개독교로 불리는 기독교 몰락의 역사가 조금은 더 늦춰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교회는 끓는 물 속 개구리 같아요. 나이 드신 장로 권사님들 입맛에 맞추느라 젊은이들이 발길을 끊은지 오래 되었거든요. 그럼에도 정작 그 사실을 교회는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6.
일본의 야구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는 이대호가 방문한 소프트뱅크 팀의 4군 경기와 훈련장을 보고 알았습니다. 게다가 이 날 경기에서 일본 프로야구 4군팀의 투수는 무려 146km를 던졌습니다. 아마 야구를 조금만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금방 아실거에요. 일본은 프로야구는 둘째 치고 '고시엔(일본의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을 동경하는 고등학교 야구팀만 해도 수천 개가 넘습니다. 이런 환경이니 오타니 같은 선수가 등장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영국만 해도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드는 모임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런 저변의 문화가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9부, 10부 리그까지 있는 축구 얘기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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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글쓰기와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런 글쓰기와 말하기의 저변을 넓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최근 들어 더욱 자주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연히 만난 목사님의 이야기와 교회의 모습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미국만 해도 스탠드업 코미디가 엄청나게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이런 저변의 문화가 미국의 예술과 연예계에서 적지 않은 영감과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아주 소수의 엘리트만 사랑받는 기형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죠. 야구도 축구도, 심지어 교회도 이런 저변과는 거리가 먼 소수를 위한 올드하고 보수적인 형태로 굳어져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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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한 글쓰기, 책쓰기 모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최근들어 '글쓰기 연대'라는 모임을 제안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글과 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퍼스널 브랜딩 뿐 아니라 삶의 의미와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서도 얼마나 큰 무기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만난 목사님의 교회처럼 글쓰기가 일상이 되는 저변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누구라도 일상처럼 자신과 자신의 일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영향력을 넓힐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 모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혹 이런 제안에 매력을 느끼는 분들이라면 '글쓰기 연대' 모임에 함께해주세요. 그리고 그 모임이 오늘 만난 목사님을 초대해 스탠드업 코미디를 꼭 한 번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