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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이 셰프의 히스테리와 나비 효과

어느 식당 홀 매니저의 고군분투 운영 이야기 #20.

1.


어느 날 빡빡이 셰프가 기본 메뉴를 제외하곤 모두 빼자고 히스테리를 부렸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못하겠다 했다더군요. 심지어 관두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화가 난 와이프는 그날 점심도 같이 먹지 않고 씩씩대며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종의 식당일 멘토인 옆집 부대찌개집을 찾아갔습니다. 한때 점심 알바를 하던 곳입니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마음이 풀린 와이프는 셰프와 논의 끝에 기본 8개를 제외하곤 다른 메뉴를 모드 빼버렸습니다.


2.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요? 짬뽕 순두부가 주 메뉴인 이 집에서 여타의 메뉴를 제외하니 오히려 회전율이 높아졌습니다. 기본 짬뽕에 계란이나 만두를 더하는 옵션을 제외하곤 셰프가 그렇게도 아끼던 연탄 불고기 같은 사이드 메뉴를 모두 빼버렸지만 손님들은 금방 적응합니다. 사실 이런 사이드 메뉴는 다른 가게에서도 취급하는 음식들입니다. 손님들은 매일 순두부 먹기 뭐해서 한 두 번 시킨 것이지 이 때문에 가게에 온건 아니었던 겁니다. 빡빡이 셰프가 조용히 묻습니다. 혹시 연탄 불고기 찾던 손님은 안계시던가요? 와이프가 잘라 말합니다. 아뇨. 전혀 없었습니다.


3.


사실 이 모든 사이드 메뉴는 빡빡이 셰프가 장사가 잘 안될 때 하나 둘씩 늘렸던 메뉴들입니다. 그런데도 주먹을 쥔 원숭이가 항아리에서 손을 빼지 못하는 것처럼 욕심과 미련과 불안을 놓치 못했던 것이죠. 하지만 T인 와이프는 F인 셰프의 이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멘토인 부대찌개 사장님의 조언으로 결국엔 의도치 않은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겁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모든 부가 메뉴를 뺐음에도 매출은 줄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말 식당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욕심을 낸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지만 오히려 내려놓을 때 잘 되는 일도 생깁니다.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던 와이프가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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