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삶을 찾아서, 스몰 스텝 다이어리 #03.
오래 전 와이프가 말했었다. 자신이 결혼할 남자를 만난다면 단 한 가지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음악적 취향'이라고. 아내는 특히 재즈를 좋아했고 결혼 전에는 대학로의 재즈 카페를 찾곤 했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단 한 번도 그 카페를 다시 찾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만 보자면 아내는 완벽히 실패한 결혼을 한 셈이다. 그만큼 나는 음악을 몰랐다. 그런데 이 음악이 필요해진 순간이 내게도 왔다. 이 역시 산책 때문이었다. 퇴근길과 점심시간, 간간히 이어지는 주말의 산책길에는 동행자가 필요했다. 그즈음 듣기 시작한 팟캐스트도 좋은 친구였지만 이런 저런 생각조차 하기 싫은 날에는 역시 음악이 필요했다. 산책이 없었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그런 숨은 욕구였다.
마침 아들의 공부를 돕기 위해 시작한 영어단어 외우기가 조금씩 탄력을 받아가던 때이기도 했다. 팝송으로 영어 공부를 하던 군복무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기왕에 시작한 영어공부이니 팝송과 연결해보면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루에 한 곡씩 '가사가 좋은 팝송'이란 키워드로 검색을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나른한 오후가 되면 그렇게 검색한 노래의 가사를 옮겨적은 후 산책을 하며 그 노래들을 반복해서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검색을 통해 찾아낸 곡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여가 지난 지금, 100여 곡이 넘는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그 누구의 추천(물론 검색을 통해 발견한 블로그의 추천을 받은 셈이지만)도 아닌 오직 내가 선택하고, 가사를 옮겨 적고, 뮤직 비디오와 관련 기사를 찾고, 자연스럽게 그 노래에 얽힌 스토리를 발견하며 만들어낸 플레이리스트였다.
그렇게 '패신저'와 '에이미 맥도날드'를 만나고 '제이슨 므라즈'와 '브루노 마스'를 만났다. 유독 통기타를 든 싱어송라이터들이 좋았다. 포크록 장르의 영국 가수들이 특히 많았다. 노래 자체가 좋기도 했지만 그들이 쓴 가사들이 특히 좋았다. 하나하나가 한 편의 '시'를 떠올리게 했다. 마치 오래된 한시를 만나고 받았던 충격과도 비슷했다. 시대와 인종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겪는 기쁨과 환희, 고뇌와 슬픔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었다. 편견을 버리고 보면 공감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 순간 한 곡의 노래를 완성하는 것이 음악적 기교만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독특한 음색으로 유명한 '패신저'의 마이클 로젠버그가 노래한 것은 뉴저지 해변 고깃배에서 삼촌과 함께 했던 낚시의 추억이었다. 그는 그런 삼촌이 암에 걸린 순간을 수백만 개의 불빛 중 하나가 꺼진 것이라고 노래했다. 엄마에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던 날도, 15살에 처음으로 찾았던 나이트클럽에서도 가슴 속 작은 불빛들이 하나씩 꺼진다고 노래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We’re born with millions of little lights shining in the dark
And they show us the way One lights up
Every time we feel love in our hearts
One dies when it moves away
우리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수백만 개의 불빛을 품고 태어나
그 불빛들은 우리에게 길을 비추어줘.
가슴 속으로 사랑을 느낄 때마다 하나씩 밝혀지지
그리고 그 사랑이 없어질 때마다 하나씩 꺼져.
- All The Little Lights, Passenger
가사를 알고, 가수를 알고 듣는 음악은 이전과는 다른 음악이 되어 있었다. 산책길에, 퇴근길에 듣는 음악은 세상으로 소음으로부터 나를 자유로울 수 있게 도와 주었다. 늘 가던 길을 가는 사람은 또 다른 길이 수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 멜론의 Top100만 자동으로 듣는 사람은 자신만의 노래를 가지기 어렵고, 그래서 자신만의 생각을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일단 자신만의 취향이 만들어지면 그곳에서부터 또 다른 길들이 수없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 가수의 다른 노래, 그 노래와 비슷한 장르, 그 그룹에 이탈한 다른 멤버의 노래, 그 시대에 유행했던 비슷한 음악들... 이런 음악들을 찾아가는 과정은 어쩌면 '진짜 나'를 발견해가는 수없이 많은 방법 중 하나일지 모른다. 내가 그 음악에 감동한다는 것은, 그 가사에 공감한다는 것은, 그 가수를 흠모한다는 것은 나의 정서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 그들과 비슷해서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샘 고슬링은 '스눕'이라는 책을 통해 사람들의 침실과 사무실을 관찰하고, MP3 플레이리스트를 확인하며, 소지품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실을 알아낼 수 있는지를 검증해주었다. 다큐멘터리 '당신의 성격'은 이런 방법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구체적인 실험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우리가 듣는 음악은, 우리가 방을 정리하는 방식은, 우리가 자주 들고 다니는 물건은 결국은 우리의 취향의 문제이며, 그 취향은 우리의 남다름에서 나온다는 것. 따라서 내가 스스로 선곡한 음악이 늘어난다는 것은 나 자신의 취향에 대해, 나 자신의 유니크함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즉 자기다움에 눈 뜬다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구체적이고도 손쉬운 방법을 통해서도 발견 가능한 것은 아닐지.
어찌되었든 이렇게 나만의 플레이리스트가 만들어진 이후부터 산책은 더욱 즐거운 일이 되어 있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산책이 가장 즐겁지만 혼자 걸어도 더이상 외롭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 삶을 이끌어주는 원동력(Driving Force)이 되어 주었다. 공을 들였던 프로젝트가 중간에 꺽이거나 도무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날은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했다. 스마트폰의 배터리를 충전하듯이, 긴 가뭄에 단비가 내리듯이 내 속의 숨어 있는 열정과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확실한 두 장치를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가동할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이러한 발견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수없이 많은 성공한 명사들을 팟캐스트를 통해 만난 팀 해리스는 그의 책 '타이탄의 도구들'을 통해 이 거인들의 아주 개인적인 습관들을 낱낱히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음악'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그들 역시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기를 버거워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그들이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 한 곡의 음악, 혹은 하나의 앨범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하던 사실이었다.
'산책'은 '음악'을 불러왔다. 그 '음악'은 나의 '취향'으로 자연스럽게 인도했다. 그 '취향'은 다름아닌 '진짜 나'를 알아가는 중요한 단서가 됨도 깨닫게 되었다. 그 '취향'이 또 다른 나만의 개성을 발견하고 확장해가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내게 '산책'은, '음악'은 가장 '나다운 삶'으로 인도해가는 일종의 지도이자 등대인 셈이었다. 그리고 이런 발견은 단지 '음악'에만 그치지 않고 좀 더 다양한 '취향'의 형태로 나를 인도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