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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스몰 스텝 다이어리 #02.

가볍게 시작한 퇴근 길의 산책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늦은 저녁 시간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자극이 되었다. 잘 정비된 보도와 자전거 도로를 따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산책과 조깅과 라이딩을 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은 테니스 연습을 했고 다양한 크기와 종류의 자전거들이 쉴새 없이 옆을 지나갔다. 하지만 주변은 한없이 조용했다. 탄천을 가로지르는 넓은 다리에서 바라보는 타워팰리스의 야경은 건널 때마다 한동안 서 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열심히 30분을 걸어 집에 도착하면 알게모르게 배인 땀 탓인지 두 배로 상쾌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보다 늦은 퇴근 시간 탓에 배가 고파진 나는 여느 때처럼 마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허기를 채우고 나니 문득 허전한 기분이 밀려왔다. 가벼운 복장으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동네를 크게 돌아 그렇게 마저 20분을 걸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산책이 어느 내 내 삶의 작은 습관으로 자리잡게 되었음을. 너무 늦게 퇴근한 날은 새벽에도 일부러 밤길을 걸었다. 퇴근길에 다 듣지 못한 팟캐스트를 듣거나 음악을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산책이 여름에 접어들 무렵,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와이프가 그 산책길에 동행을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딸이 뒤를 따라나섰다.


IMG_0353.jpg 산책 중 쏟아지는 둘째의 수다를 듣고 천일야화의 가능성을 뒤늦게 깨달았다


가족과 동네 마트를 가던 길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목적이 따로 없기에 발걸음은 여유로웠고 자연스러운 일상의 대화들이 산책길을 채우기 시작했다. 와이프는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의 보너스로 카페를 여는 같은 교회 아줌마 얘기를 꺼냈고, 딸은 평소 즐겨보는 만화의 남자 주인공 얘기로 수다를 떨었다. 급기야 좀처럼 자기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아들도 가끔씩 산책에 동행하곤 했다. 그건 또 다른 즐거운 변화의 경험이었다. 산책이 아니라면 같은 집에 있어도 좀처럼 대화를 나눌 시간이 나지 않는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산책은 자연스럽게 가족간의 대화를 이끌어냈다. 산책 중에는 티비도 스마트폰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연한 일을 내심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산책은 또 다른 산책을 불렀다. 당시 다니던 회사 옆에는 서울숲 공원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대략 30분 정도의 시간이 비게 마련인데 그 시간은 동료들과 수다를 떨 때도 있었지만 밀린 일을 서둘러 시작할 때도 적지 않았다. 나는 그 시간에 산책을 시작했다. 서울 숲의 한 구역을 크게 돌면 대략 20분이 걸렸다. 다양한 나무들로 가득한 공원의 흙길은 또 다른 운치와 정경을 선물했다. 5월에는 신혼 부부들의 웨딩 촬영이 매일 같이 이어졌고 노란색 유치원복을 입은 꼬마들이 줄을 지어 지나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일기예보 촬영을 위해 한 무리의 방송차량과 사람들이 몰려든 날도 있었고, 텐트나 돗자리 하나를 들고 와 망중한을 즐기는 커플들은 매일같이 볼 수 있었다.


IMG_1488.jpg '미스김'이 꽃이름에도 붙을 줄 누가 알았을까?
IMG_1095.jpg 이 길냥이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의 사랑을 갈구했다


그 길을 나는 걸었다. 그 날 오전의 풀리지 않는 기획안을 두고 끙끙대기도 했고, 머리를 떠나지 않는 사소한 고민을 털어내기 위해 걷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효과가 있었다. 복잡한 일들이 한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단순해지는 경험을 하곤 했다. 발에 닿는 흙길의 감촉과 스치는 바람이 머릿속의 이런저런 고민들을 털어내게 도와주었다. 가끔은 벤치에 앉아 그 시간 자체를 즐기곤 했다. 평소 같으면 바깥보다 열 배는 어두운 사무실에 앉아 풀리지 않는 생각의 고리를 붙잡고 허둥대고 있을 시간이었다. 전혀 다른 세상이 바로 곁에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매일 같은 곳을 산책하던 나는 길이 시작되는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양 갈래로 길게 늘어진 나무 숲 속 갈색 산책로의 풍경을 스마트폰에 담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나니 그 속에 사계절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기기 시작했다. 내친 김에 다른 정경들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비둘기가, 어느 날은 꿩(처럼 생겼으나 확신할 수 없는)을, 1년에 한 두 번은 바로 앞을 걸어가는 까마귀 사진까지 찍을 수 있었다. 주변을 배회하는 길 고양이는 두 어 마리가 있었다. 그 중 한 마리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는 체를 하는 애교 넘치는 길냥이였다. 어느 날인가부터는 나무의 이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주로 다니는 산책길의 나무가 '팽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늘로 곧게 뻗은 멋진 나무의 이름은 '스트로브 잣나무'였다. 그 옆에 흐드러지게 핀 조그만 국화같은 풀꽃이 '개망초'임을 알았다.


IMG_2261.jpg 내가 최애한 서울숲의 익숙한 산책로
IMG_0492.jpg 계절마다 시간마다 그 모습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궁금함이 방법을 만들어냈다. 집에 꽂아두었던 식물도감과 나무도감을 꺼내들었고, 마침 서비스를 시작한 꽃검색 서비스를 통해 인근의 풀꽃 이름들을 하나씩 검색하기에 이르렀다. 신기한 것은 그것의 이름을 알게 된 순간 그것들을 대하는 내 자세가 달라졌다는 거였다. 모두 '나무'이거나 '꽃'이거나 '새'이거나 하던 세상이 모두가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 디테일한 세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김춘수의 시처럼.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자 그들의 이야기가 함께 따라왔다. 왜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것들이 다른 것들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 왜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익히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기르는 강아지와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준 그 순간, 이미 가족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산책은 일상을 바라보는 나의 좁은 눈을 넓게 열어주었다. 그것은 바쁘게 지나가는 한 두번의 산책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매일매일 반복하는 산책이 이 세상의 미묘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을 열어주었다. 비슷해 보이는 나무들이 실은 조금씩 다른 색의 가지와 이파리와 열매를 갖고 있었다. 계절마다 산책로는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공원을 찾는 이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그 변화를 나도 모르게 인지하는 즐거움은 자칫하면 사무실의 한 평 공간에 갇힐 내 생각의 물꼬를 조금씩 터주기 시작했다. 어쩌면 건강은 산책이 줄 수 있는 유익 중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산책에 중독되어가 가기 시작했다. 그건 여느 중독과는 다른 행복한 중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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