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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시작하는 작은 브랜드를 위하여...

1.


이제 막 오십을 넘긴 친구들과 종종 '피자'를 먹으러 갈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잠실에 있는 '옥인피자'를 갑니다. 이 피자는 사장님이 시장에서 직접 고른 싱싱한 단호박으로 만들어집니다. 질 좋은 호박에 생크림과 우유가 더해져 단호박 무스가 만들어집니다. 단맛은 오직 꿀로만 냅니다. 지나치게 달거나 인위적인 맛 대신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입니다. 이 브랜드의 모토는 '조금 느리지만 건강하게' 입니다. 부부가 만드는 이 피자는 정통 피자와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더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어디서도 이런 피자를 맛볼 수 없으니까요.


2.


유유 출판사는 책읽기, 글쓰기에 관한 책들만 출간하기로 유명한 조그마한 출판사입니다. 독자의 공부를 돕는 책을 내려고 하다 보니 가장 기본이 되는 읽기와 쓰기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이 분야에서 여러 권의 스테디셀러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김정선 작가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이 이 출판사의 대표작들입니다. 한편 보리 출판하는 세밀화 하나로 유명해진 출판사입니다. 수년씩 걸려 동,식물을 그리는 이 출판사의 책들은 값싼 사진들로 가득한 아동 도서와 확실히 차별화되었습니다.


3.


한편 '남해의봄날'은 서울이 아닌 지방, 그것도 통영에서 출판사를 차렸습니다. 이 출판사의 정은영 대표는 회사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유명 작가나 명사보다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이웃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스펙 쌓기와 취업난에 지친 청년들, 대도시의 삶이 답답해진 지식노동자, 진정성 있는 삶을 꿈꾸는 분, 아님, 그저 통영이나 남해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좋겠네요.”


4.


우리는 회사를 만들면 매출을 늘리고 단기간에 이익을 극대화하는 사업의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브랜드란 규모를 충분히 키운 후에 고민할 만한 호사스런 마케팅의 일부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가끔은 ‘기업은 성장하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말이 진리처럼 받아들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로버트 토마스코는 '거대 기업의 종말'이란 책에서 이러한 해석이 편견이자 선입견을 말하고 있습니다.


5.


“사업에서 성장이란 개념은 팽창과 혼동되기 쉽다. 성장하는 기업들은 흔히 부산물, 상관물, 또는 성장의 징후로 팽창을 경험한다. 하지만 성장의 자리를 팽창이 차지하게 되면 수단과 목적은 혼동을 일으킨다. 팽창 그 자체는 결코 영구적 목적이 될 수 없다. 오직 팽창만 추구하는 것은 유기체로 보자면 위 확대증이나 암과 동일하며 기업 세계에서 보자면 엔론, 타이코, 그리고 월드콤과 동일하다.”


6.


성심당은 2023년에만 무려 31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해 매출은 1243억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52%나 증가했죠.수천 개의 매장을 가진 대형 프렌차이즈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빵집은 대전 지역 외에서 빵을 팔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전략이 성심당의 지금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전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성심당 빵을 사가야 한다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약속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7.


대기업이 이미 패권을 장악한 시장을 작은 기업이 비집고 들어가기란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그래서 스몰 브랜드는 시장을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분할하거나 전혀 다른 가치(제품이 아니다)를 선보여 그것을 기준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최초는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는 이점을 노리는 것입니다. 경쟁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오히려 '비경쟁'을 통해 성공한 스몰 브랜드들을 소개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8.


앞서 소개한 스몰 브랜드들은 기존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얻는 가치를 인정하고 동일한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장이 이미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가치들 이외에 사회에 필요한 가치가 없을까를 고민합니다. 결과적으로 치열한 다툼으로서의 경쟁은 사라집니다. 다툼이 사라진 자리에 오히려 협력과 공생이 남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남들이 보기에는 경쟁자가 분명한 대상의 훌륭한 점은 쉽게 인정할 수 있고, 그들과의 협력과 제휴에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게다가 좋은 점은 받아들이고 문제점은 지적할 수 있습니다.


9.


물론 모든 스몰 브랜드가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은 압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치열한 시장에서 '비경쟁'을 선택한 브랜드들은 '롱런'하는 브랜드가 됩니다. 이런 브랜드가 추구하는 성장은 팽창이 아니라 목적에 맞는 전진입니다. 생존을 위한 다양한 선택들이 결과적으로 브랜드로서 전진할 수 있는 차별성과 자기다움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옥인피자와 보리출판사는 '느림의 미학'이라는 삶의 철학을 피자에 녹여냈습니다. 남해의봄날과 성심당은 '지역성'을 자기 브랜드의 핵심 경쟁력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오래도록 사랑받는 브랜드로 그들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10.


이제 막 시작하는 브랜드를 위한 메시지 치고는 너무 거창하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의 사업이 망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이와 같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황금거위의 배를 가르듯 빠른 엑시트를 통해 큰 돈을 거머쥘지, 100년을 가는 평생의 브랜드로 키워갈지 시장이 선택을 강요하는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어떤 브랜드를 만들어갈지 고민해야 합니다. 스몰 브랜드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뾰족한 자신만의 철학, 즉 창업의 이유가 없이는 선택의 순간에 옳은 결정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1.


오늘날 기업들은 사람들을 자극해서 끝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방법에만 너무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오랜 세월 훌륭하다고 평가 받는 브랜드들은 소비의 극대화가 아니라 (남들이 아무리 그게 뭐 별거냐고 말해도) 가치의 극대화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물론 경쟁을 통한 성장을 목표로 한다면 그 선택은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도록 사랑받는 스몰 브랜드를 꿈꾼다면 그 '작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뤄가는 앞선 브랜드들에게서 배우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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