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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 식당의 비밀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폴 스톨츠가 처음 개발한 역경지수는 '스트레스에 생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수'를 의미합니다. 그는 사람마다 역경이 닥쳤을 때 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고 말하는데, 등산을 하는 사람의 세 가지 유형에 빗대어 역경을 겪게 된 사람들을 분류했습니다. 그 세 가지 유형은 바로 퀴터(Quitter; 곧 그만두는 사람), 캠퍼(Camper; 대안 없이 안주해 버리는 사람), 클라이머(Climber;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 즉 등산을 해내고야 마는 사람)입니다. 이는 한 명의 인간뿐만 아니라 조직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퀴터와 캠퍼, 그리고 클라이머


몇몇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많은 기업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조직원들 중 약 80%를 캠퍼로 채워 둔 셈이라고 합니다. 캠퍼가 많은 조직은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그들이 만드는 브랜드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런 조직과 브랜드는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재난과 환경 변화, 그리고 위기 앞에서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클라이머가 많은 조직은 얼마 전 겪은 전세계적인 불황 같은 시기에도 이를 이겨 내려는 시도와 노력을 계속합니다.


식당 일은 고됩니다. 성공한 식당의 미담 치고 휴일을 제대로 쉬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행은 언감생심입니다. 하루라도 문을 닫으면 혹이라도 단골이 떠날까 외식업 사장님들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일합니다. 그렇게 돈을 벌고 빌딩을 올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몇 년을 일하다보면 건강은 나빠지고 삶은 피폐해집니다. 그리고 이때 식당은 또 한 번의 변신을 강요받습니다. 하던 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10년을 더 일할 이유를 찾을 것인가.


당신의 업을 이어갈 이유


자본주의 사회에서 '멈춤'은 곧 추락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날아가는 로켓과 같습니다. 식당이 1년 365일 문을 닫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관성대로만 일하면 우리는 목적지를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오래가는 식당들은 나름의 '일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64김만두의 박 대표는 그것의 '삶의 이유'였습니다. 역전식당의 김 대표에게는 그것이 '아들의 부탁’이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서 저자는 이런 삶의 이유가 있는 사람이 나치의 포로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도 우리에게는 지금의 직장을, 식당을, 가게를, 학원을 이어가야만 할 이유가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고민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매출을 보장받을 때에만 가능한 호사스런 고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자영업자들도 이런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한 번은 이 지긋지긋한 생업을 이어갈 이유에 대해 자신에게서든 타인에게서든 질문을 받게 됩니다.


세상의 수많은 성공한 브랜드들 역시 이런 질문을 맞딱뜨리곤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 '펭귄북스'는 당시 당연시 여겨져졌던 비싼 양장본의 책을 보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책이 그렇게 무겁고 비싸야만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담배 한 값의 가격으로도 살 수 있는 문고판 책을 만들었습니다. 꼭 죽음 앞에서 철학적 질문을 던져야만 좋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도 오래 가는 식당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질문을 가진 식당은 훨씬 더 오래 사람들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오래가는 식당들의 고집


"오래가는 생명력을 지닌 식당을 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 생명력이라는 것은 본질에 다가갈수록 강해지겠지요. 맛의 근본에 이를수록,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닿을수록, 어떤 큰 위기가 닥쳐도 손님들의 귀한 선택을 받으리라 믿습니다.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 언제 들어도 좋은, 오래도록 사랑받는 음악처럼요.” 고기리막국수를 운영하는 김윤정 대표의 말입니다. 만일 이런 고집이 없었다면 암에 걸린 남편과 함께 찾은 계속 깊숙한 조그만 식당에서 지금의 성공을 일굴 수 있었을까요?


줄 서는 식당 몽탄은 분점이나 가맹점을 내지 않습니다.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밤 9시가 되면 반드시 문을 닫습니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 중 “왜 가맹 사업을 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몽탄의 조준모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돈을 더 빨리 벌 수 있으니까 그러고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희소성 차원에서, 롱런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그러지 않는 거죠.”


업을 이어갈 이유를 찾아라


오래가는 식당은 나름의 고집이 있습니다. 섣부른 성공을 위해 서둘러 거위의 배를 가르는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 뒤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지역 사회에 대한 애정이든, 브랜딩을 위한 차별화를 위한 전략적 판단이든 중요한 것은 '나름의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나름의 이유가 없는 식당은 세상의 트렌드와 욕심과 비판에 쉽게 휘둘리고 맙니다. 그리고 작은 위기에도 쉽게 쓰러지고, 그래서 사라지고 말것입니다.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IMF 못지 않은 불황의 기운이 자영업 전체를 휘감고 있습니다. 성장이 아닌 당장의 생존이 절박한 가게들이, 식당들이, 학원들이 자꾸만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1%의 가게들은, 식당들은, 학원들은 사람들에게서 더욱 사랑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업을 이어가는 선명한 이유'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두가게의 뜨거운 김 앞에서 삶의 이유를 찾았던, 아들의 간절한 부탁 앞에서 재창업의 이유를 찾았던 두 대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작은 것에서 큰 가치를 찾은 기업들


무엇인가를 '극대화한다고 했을 때 오늘날 기업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제품을 만드는 공장에서는 생산 효율의 극대화를, 인사 부서에서는 조직 운영 효율의 극대화를, 마케팅 부서에서는 커뮤니케이션 효율의 극대화를, 영업 부서에서는 판매량의 극대화를, 그리고 최종적으로 기업은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달리고 있습니다. 자원의 한계 안에서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기업은 적은 자원 대비 높은 효율을 올리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합니다.


그런데 브랜드를 만드는 데 있어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극대화해 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아주 작은 것이라도 그것에서 큰 가치를 찾아내고, 이를 극대화하는 일입니다. 이는 지금껏 비즈니스 현장에서 혁신을 만들어 낸 많은 기업들이 가장 먼저 선보인 행보였습니다. 도대체 누가 샌드페이퍼(사포)와 끈적끈적한 접착제를 만들던 작은 기업이 오늘날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로 손꼽히는 3M 이라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줄 알았을까요? 도대체 누가 지금으로부터 125년 전에 애틀란타의 작은 약국에서만 판매하던 코카 잎으로 만든 음료가 자산규모 약 200억 달러의 코카콜라라는 브랜드가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핵심가치를 극대화하라


이 브랜드들을 만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남들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작은 제품이나 기술에서 지역과 시대를 초월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큰 가치를 발견해 내고 이를 극대화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그 시대에 없던 것이거나 주목 받지 못한 것들이라고 해서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면 지금 이 브랜드들이 존재하기나 했을까요?


오늘날 기업들은 가치가 아니라 다른 것의 극대화, 어쩌면 사람 들을 자극해서 계속 소비를 부추기는 방법에만 너무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오랜 세월 훌륭하다고 평가 받는 브랜드들은 소비의 극대화가 아니라 (남들이 아무리 그게 뭐 별거냐고 말해도) 가치의 극대화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진정으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한 경제학자이자 사상가 에른스트 슈마허 의 생각과 맥을 같이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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