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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에게 샴푸를 팔 수 있을까?

TV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말했다. 영화 산업은 곧 망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영화 시장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은 영화, 더 좋은 감독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봉준호, 박찬욱 감독은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비디오 테잎의 시대를 지나 오늘날 우리는 OTT로도 어떤 영화는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관이 주는 그 특별한 경험은 TV의 작 은 화면으로 대신할 수 없었다. 거대한 화면 앞에서 팝콘을 먹으며, 웅장한 사운드와 화면 앞에서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는 시간을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빅 데이터를 다루는 송길영 대표는 어느 대담 프로그램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미래에도 여전히 AI가 대신할 수 없는 직업이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사람을 전제로 한 직업은 사라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부님이나 스님처럼 사람들의 관계를 기반으로 한 산업은 더 깊어지고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태어난 사람, 아픈 사람, 돌아가신 분을 돕는 직업은 남는다고도 말했다. 어렵고 수고스러운 일은 남을 것이며, 기여와 진정성이 경쟁력으로 치환된다고도 이야기했디. 그러면서 지금부터 해야 될 일은 행위를 파는 게 아니라 의미를 팔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키오스크를 만나는 일이 일상인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은행에서는 직원이라도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시는 어르신들이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마트에서 판촉일을 하는 사람들은 굳이 자신에게 와서 아들 자랑을 하는 손님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70년 대생들이 본격적인 은퇴를 하면서 시니어 시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의 정서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과 사람만이 주고 받을 수 있는 어떤 따뜻함의 가치를 기억하고 있는 세대이다. 바로 AI가 대신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인 셈이다.


제가 아는 분은 80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바쁘게 살고 계신다. 코카콜라 같은 외국계 기업의 임원으로 일한 경험을 살려 대기업 임원을 코칭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 이때 필요한 것은 개인의 경험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능력이다. 실제로 기업의 임원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 자신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코칭 비용도 비쌀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건 아주 어려운 일이니까. 아주 오래된 고전 '어린왕자'라는 동화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마트에서 사람들에게 물건을 권하는 일을 우리는 '판촉'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리고 그 단어에는 직업에 대한 약간의 가치 판단이 들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 직업의 본질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어떤 판촉 직원은 스님에게 샴푸를 팔기도 하는 것이다. 그저 물건 하나 더 팔려는 사람은 많았지만 스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나는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감정 공감자'로 부르기로 했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의 업에 대한 자부심이 필요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의미 부여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TV 프로그램에서 30년 이상 떡볶이 떡을 만들어온 분을 본 적이 있었다. 지금도 밤이면 한글 맞춤법을 공부한다는 이 분은 그 일을 막 시작하던 때에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분명 존경받는 직업은 아니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고, 그 결과 떡볶이 브랜드가 어느 때보다도 사랑받는 지금까지 자신의 업을 이어올 수 있었다. 나는 이분이 30년 동안 이 일을 이어온 힘은 자신의 업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생계를 잇기 위해서 이 일을 해왔다면 지금과 같이 환한 얼굴로 대학생 딸의 존경을 받기는 어려웠을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송길영씨가 말한 행위를 파는게 아닌 의미를 파는 일의 살아있는 사례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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