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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브랜딩' 한다면?

서울이라는 도시는 늘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전통과 첨단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골목 어귀의 한옥과 유리벽 마천루가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하는 곳, 밤낮이 끊이지 않는 에너지 속에서 사람과 기술, 문화와 감정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뒤섞이는 곳. 그렇기에 서울을 브랜딩한다는 건 단순히 도시를 ‘꾸미는 일’이 아니라, 이 복잡하고도 매혹적인 혼합의 질서를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낼 것인가의 문제다.


도시 브랜딩의 출발점은 ‘정체성’이다.


서울은 누구인가?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혁신’, ‘문화’, ‘관광’을 외친다. 그러나 서울의 본질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존’ 그 자체다. 시간의 공존, 감정의 공존, 사람들의 공존. 조선의 궁궐 옆에서 전기차가 달리고, 골목의 국숫집 위로 인공지능 스타트업의 불빛이 새어 나온다. 역사가 미래를 덮지 않고, 기술이 전통을 밀어내지 않는다. 이 모든 층위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도시, 그게 서울이다.


그렇다면 서울만의 차별성은 어디에 있을까?


뉴욕이 자본의 도시라면, 도쿄가 질서의 도시라면, 서울은 ‘감정의 도시’라 할 수 있다. 빠르게 움직이지만 그 안에는 늘 사람의 온기가 있다. 새벽에도 문이 열려 있는 편의점, 야근 후 포장마차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한강변을 따라 걷는 연인들, 노트북을 켜놓고 새벽까지 일하는 프리랜서들. 이 모든 장면은 서울의 리듬이다. ‘서울다움’은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한 일상 속에서도 서로를 끌어안는 유연함에 있다. 그렇기에 서울의 브랜딩은 ‘사람 중심의 도시 경험’을 설계하는 일이어야 한다.


로고나 슬로건 이전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먼저 들어야 한다.


“I SEOUL U”가 시민의 참여로 만들어졌듯이, 진짜 브랜드는 시민이 만드는 것이다. 서울의 거리와 공간은 무대이고, 시민은 그 위의 배우다. 정책은 연출이고, 디자인은 조명이다. 그리고 그 무대의 주제는 언제나 ‘함께’여야 한다. 사람과 사람, 과거와 미래, 한국과 세계가 만나는 접점을 세심하게 설계하는 일 — 그것이 브랜딩이다.


서울은 세계가 주목하는 콘텐츠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K-팝, 드라마, 패션, 디자인, 스타트업, 그리고 음식 문화까지. 하지만 이제는 ‘소비되는 서울’이 아니라 ‘참여할 수 있는 서울’로 나아가야 한다. 관광객이 구경만 하는 도시가 아니라, 머물며 배우고 창조하는 도시. 한복을 입고 사진만 찍는 곳이 아니라, 직접 디자인 워크숍에 참여하고, 지역 상점에서 대화하며 문화를 교류하는 곳. 서울이 진정한 글로벌 브랜드가 되려면, ‘보여주는 도시’에서 ‘함께 만드는 도시’로 전환해야 한다.


시각적 아이덴티티 또한 그 철학을 따라야 한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로고, 언어의 장벽을 넘는 픽토그램, 감정이 느껴지는 색채와 곡선. “Seoul, My Soul”이라는 문장이 지향하는 바도 결국 그것이다. 이 도시의 중심에는 기술도, 자본도 아닌 ‘영혼’이 있다. 서울은 거대한 기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이며, 매일의 경험 속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새로 써 내려가는 생명체다.


서울 브랜딩의 핵심은 그래서 ‘이야기’다.


한 사람의 삶, 한 골목의 변화, 한 계절의 공기까지 모두가 브랜드의 재료가 된다. 그 이야기들이 모여 도시의 목소리가 되고, 그 목소리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브랜드는 결국 말이 아니라 경험이다. 서울은 이미 그 경험을 매일 만들어내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더 잘 듣고, 더 아름답게 보여줄 것인가이다.


나는 서울을 ‘완성된 도시’가 아니라 ‘진화 중인 이야기’로 본다.


이 도시는 늘 무엇인가를 새롭게 배우고, 시도하고, 부딪히며 자신을 확장해왔다. 그래서 서울의 진짜 매력은 ‘완벽함’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수천만 개의 삶이 얽히고설킨 이 거대한 무대에서, 매일 새로운 스토리가 태어나고 사라진다. 그 끝없는 움직임 속에서 ‘서울다움’은 자라난다. 서울의 브랜딩은 그 무한한 가능성을 담는 언어를 찾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아마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서울, 당신의 이야기가 머무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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