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의 흥망은 언제나 시대의 감각과 맞닿아 있다. 서울 스페이드와 더그클럽, 이 두 브랜드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멋’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쉽게 시대에 휩쓸리고, 또 얼마나 유지하기 어려운 감정인지를 알 수 있다. 둘 다 한때는 트렌드의 중심에 있었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이미지, SNS에서의 주목, 그리고 “서울다운 무드”를 전면에 내세운 브랜딩. 그러나 불과 몇 해 만에 그 반짝임은 흐려졌다. 그 이유는 단순히 ‘유행이 지나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것은 ‘정체성의 부재’였다.
스페이드클럽서울은 “도시 속의 그리너리”를 표방했다. 시멘트와 네온빛 사이에서 자연의 감성을 찾는, 서울의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스스로를 규정했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자연과 도시의 조화’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브랜드가 사용해온 문장이기도 했다. 결국 소비자에게 스페이드클럽서울은 ‘어딘가 본 듯한 감성’으로만 남았다. 제품은 세련됐고, 캠페인은 정갈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을 만큼의 이야기를 갖지 못했다. 브랜드의 언어는 있었지만, 영혼은 희미했다.
더그클럽의 경우는 반대편에 있었다. 이 브랜드는 거칠고 자유분방한 스트리트 감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름 그대로 ‘Thug(거침)’과 ‘Club(무리)’의 조합이었다. SNS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졌고, Z세대에게는 새로운 상징처럼 소비됐다. 하지만 문제는 속도였다. 브랜드는 너무 빨리 성장했고, 그만큼 금방 피로해졌다. “핫하다”는 말은 언제나 유효기간이 짧다. 더그클럽은 개성 강한 이미지에 비해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생산, 유통, 커뮤니티—가 단단하지 않았다. 한정판 전략, 인플루언서 중심 마케팅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그 화제가 지나간 뒤 남은 것은 ‘다음 시즌엔 뭐가 나오지?’라는 피로감뿐이었다.
두 브랜드의 공통점은 ‘처음엔 강렬했지만, 그다음이 없었다’는 것이다. 스페이드클럽서울은 이상적으로 보이려다 현실과 멀어졌고, 더그클럽은 현실에 치중하다 방향을 잃었다. 브랜드의 성패는 결국 ‘속도’가 아니라 ‘지속성’에 달려 있다. 잠깐의 주목으로 만들어진 열광은 브랜드를 띄울 수는 있어도, 그 위에 신뢰를 쌓을 수는 없다. 진짜 브랜드는 한 시즌의 유행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선택받는 이유를 만든다.
또 하나의 문제는 ‘가격과 가치’의 불균형이었다. 더그클럽의 후디 한 벌은 40만 원을 넘었다. 그러나 소비자는 그 가격 속에서 ‘디자인’보다 ‘이름값’을 샀다. 희소성과 유행이 만들어낸 일시적인 욕망이었다. 반면 스페이드클럽서울은 세일과 프로모션이 잦았다. 브랜드가 세운 가격이 스스로 무너지는 순간, 소비자는 ‘브랜드 가치’가 아니라 ‘할인율’로 기억하게 된다. 두 브랜드 모두 다른 방식으로 가격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패션에서 중요한 건 옷의 형태가 아니라 그 옷이 말하는 태도다. 스페이드클럽서울은 말이 너무 많았고, 더그클럽은 말 대신 자극을 택했다. 전자는 브랜드의 본질을 잃고 관념 속으로 들어갔고, 후자는 열광 속에서 스스로를 소모했다. 결국 둘 다 ‘서울다움’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품고 출발했지만, 진짜 서울의 얼굴—질서와 혼돈,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감정의 결—에는 닿지 못했다.
나는 이 두 브랜드의 이야기를 보며 ‘브랜딩’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 생각한다. 브랜드는 로고나 슬로건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관계’다. 소비자와 함께 쌓아온 기억, 그 기억이 주는 신뢰가 곧 브랜드의 자산이다. 서울 스페이드와 더그클럽은 시작은 감각적이었지만, 관계를 이어갈 언어를 만들지 못했다.
패션은 결국 ‘지속되는 감정’의 예술이다. 트렌드는 지나가지만, 태도는 남는다. 이 두 브랜드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단순하다.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세련됨’을 쫓는 일이 아니라, ‘진정성’을 견디는 일이라는 것. 시대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시대가 바뀌어도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이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그렇듯, 진짜 브랜드도 변화 속에서 자신을 다시 정의해야만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