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다운 인터뷰 #01.
* 이미지 출처: GRE페이지 (http://goo.gl/lWfyvW),
한 장의 그림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삶도 다른 또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스터디를 하고, 스펙을 쌓고, 자소서를 쓰면서 바늘구멍만큼이나 좁은 취업 문을 애닳아 하는 그런 삶 말이다. 하지만 우연히 열린 일본 유학길에서 그녀는 다른 길을 찾았다. 화려하지도 요란하지도 않지만 자신도 다른 이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삶 말이다.
‘GRE’라는 이름의 페이스북엔 거친 질감의 종이에 몇 개의 선과 별다른 채색도 없이 그려진 그녀의 그림들이 이삼일에 한 번씩 올라온다. 페이지의 팬이 5만명, 각각의 그림에도 몇 천, 몇 만개의 '좋아요'가 쉽게 달린다. 무엇이 그녀를, 그녀의 그림을, 또 그녀의 팬들을 행복하게 하는 걸까? 유니타스브랜드가 직접 만나 그 숨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그림을 그리기 전, 어떤 사람이었나?
어른이 되는 게 무서웠다. 친구들처럼 취업 스터디를 해야 하나, 토플이나 토익을 해야 하나, 평생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며 늘 불안하고 우울했다. 미래의 꿈보다 당장 먹고 살 고민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았지만 생활과 학교 과제에 치이느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Q. 일본에서의 유학 생활이 전환점이 되었다고 했다.
내가 지냈던 곳은 도쿄 외곽의 조용한 마을이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 아기 키우는 분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아이들은 흙장난하거나 미끄럼틀을 타고 노는 그런 곳이었다. 벤치에 앉아 할머니랑 짧은 일본어로 ‘오늘은 뭐 드실 건가요?’와 같은 일상의 대화를 나누곤 했다. 아무도 한국에서처럼 ‘너 지금 여기서 뭐하니?’라고 묻지 않아 좋았다. 그렇게 여유가 생기자 비로소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보게 됐다. 거기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도 찾았고.
Q. 그게 지금과 같은 그림이었나?
그런 셈이다. 어느 날 너무 좋아하는 한국 작가 한 분이 일본에서 전시회를 했다. 기회가 닿아 잠깐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뭐 하는 친구냐고 물어서 그림 그린다고 했더니 작업을 보여 달라 했다. 사진을 찍거나 어디 보여준 적도 없다고 했더니 왜 골방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냐고 묻더라. 부끄러워서 그렇다고 했더니 ‘그 그림이 부끄러운지’의 여부는 대중이 판단할 거라고 했다. 그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Q. 그래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
A. 집에 가서 그림을 그려 인터넷에 올렸다.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따뜻하다, 위로 받고 간다는 얘기에 되려 내가 힘을 얻었다. 그래서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어 계속 그림을 그렸다. 내 그림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그때 ‘아, 내가 좋아하는 일을 꼭, 계속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Q.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어느 날 메일이 한 통 왔다.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 가신 후에 친구들이 물어보면 늘 괜찮다고 말해왔다고 했다. 그런데 내 그림을 보고 몇 시간 동안 울었다며 고맙다고 했다. 물론 그 그림을 그릴 때 누군가의 그런 상황을 생각하고 그린 것은 아니었다. 내 그림이 그렇게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Q. 왜 사람들이 김다영 작가의 그림에 열광한다고 생각하나?
모르겠다. 뭔가를 날카롭게 캐치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다만 다루는 소재들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예술이나 스킬을 논할 실력은 못되지만 모두가 생각하는 것을 그려서 그런 게 아닐까?
Q.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 그림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엄마 냄새’라는 그림이다. 그 당시가 유학하면서 가장 힘들 때였다. 가족도, 친구도 너무 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었으니까. 전화하면 엄마가 걱정 하실 까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런데 가방에서 우연히 엄마 냄새가 나는 옷을 찾았다. 엄마 냄새 맡으면서 귀 파주시던 생각도 나고. 그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는 걸 보고 나처럼 힘든 사람이 많은가, 보다 생각했다.
Q.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나?
MUJI 브랜드, 뉴에이지 음악, 인디밴드를 좋아한다. ‘어쿠스틱 라이프’를 그리는 ‘난다’ 작가도 좋아한다. 마니아적인 기질이 있어서 오기가마 나오코 영화만 수없이 돌려본다. 혼자 걷거나 잔잔한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많거나 시끄러운걸 싫어한다. 새로운 사람도 좋지만 익숙하고 편안한 사람이 더 좋다. 그래서 얇고 넓기보다 좁고 깊게 친구들을 사귀는 편이다.
Q.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가?
한국 드리마는 굉장히 자극적이어서 욕을 하면서도 계속 보게 된다. 맵고 짠 음식을 계속 먹으면 몸이 안 좋아지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끌리는 것과 같다. 나는 그보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나 마쓰다 미리의 만화같이 마음이 가벼워지고 따뜻해지고 생각하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MSG가 들어간 라면을 대신할 수 있는 건 MSG가 빠진 라면이 아니다. 고구마나 감자처럼 전혀 다른 것이다. 일상의 소박한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과 더 많이 소통하고 싶다.
* GRE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gimgre?fref=ts
* 김다영 작가 블로그 - http://blog.naver.com/gimg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