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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공대생, 최재혁

자기다운 인터뷰 #03.

그는 공대생이다. 철든 후에야 사진을 알았고,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에 전국을, 전세계를 다녔다. 그러던 중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눈에 띄어 1년간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전세계에서 모인 사진가들과 함께 남극을 향하는 쇄빙선에 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직업 사진가가 아니며 그럴 계획도 없다. 오히려 그는 지금 금융공학자를 꿈꾸고 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 안정적으로 사는 것을 꿈 꾸는 우리에겐 무언가 상상 같은 삶이다. 어떤가? 이 젊은이의 삶이 조금 궁금해지는가?

인터뷰를 정리하다 보니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나오던 <라이프>지 사진기자 숀 오코넬이다. 그는 그렇게 찍기 힘들다는 눈표범이 렌즈에 들어와도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그리고 왜 찍지 않냐고 다그치는 월터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그 순간의 행복을 오롯이 누리려던 경외감으로 가득했던 그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그 눈빛이 이 젊은이의 이해하기 힘든 삶의 행보를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지 않을까? 공대생 최재혁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삶을 이끄는 뜨거운 그 무엇이 있느냐고,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이냐고.


<사진이 공대생에게 가르쳐준 몇 가지 것들>

Q. 공대생이 왜 하필 사진인가?

어떤 대상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하는 가장 좋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보고 그림을 그린다 치자, 그것 역시 실체가 아닌 내 의식에서 만들어진 대상 아닌가. 그러한 조작이나 편집 없이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었다. 

Q.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느 날, 학교 동기가 DSLR 카메라를 가져와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모르는 내가 봐도 확실히 여느 사진과 달라 보였다. 마침 공대생, 소위 말해 ‘공돌이’가 가지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벗고 싶어 하던 참이었다. 그림은 엄두가 안 나지만 사진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길로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벌고 DSLR과 번들 렌즈를 샀다.

Q. 사진은 어떻게 배웠나?

1년 동안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주변의 모든 것들을 찍기 시작했다. 뭘 알고 찍었다기보다는 마구잡이로 찍고 다닌 셈이다. 그리고 조금 익숙해진 후에는 주변 풍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쯤 지나자 더 잘 찍고 싶은 욕심에 ISO, 셔터 속도, 조리개와 같은 용어, 카메라의 원리 등을 배우기 시작했다.

Q. 사진을 찍고 나서 무엇이 달라졌나?

사진 찍는 기술도 늘었지만, 그 밖에 얻은 것들도 적지 않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모두가 그렇듯) 공부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사진을 찍다 보니 평소엔 보지 못하던 것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창피한 얘기지만 사진을 찍기 전까지만 해도 전라도가 어디에 있는지, 경상도가 우리나라의 어디쯤 있는지 전혀 몰랐다. 경기도가 서울을 감싸고 있다는 것도 사진을 찍다 처음 알았다. 수학이나 과학 문제 푸는 데 매달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작은 사람이 되어 있었던 거다.

<나를 제한하는 삶을 넘어서다>

Q. 그 후로 생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야경이나 풍경 사진은 장비만 갖춰져도 어느 정도는 멋지게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생태 사진은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이 험난하다. 그리고 정직하다. 부엉이를 찍었던 때가 생각난다. 자연스러운 부엉이의 모습을 찍겠다고 나무 위에 텐트를 치고 이틀 동안 꼼짝도 않고 기다린 적이 있다. 부엉이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모습이 있지 않나. 나무 구멍 앞에서 고개를 돌리며 눈을 깜빡하는 모습, 그런 뻔함이 재미없었다. 고되고 힘들지만, 예측 불가능한 동물들의 행동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Q. 왜 하필 생태 사진인가?

원래 동물을 좋아했다. 직접 다가가면 도망을 가거나 하는 식으로 원래의 모습을 감추기 마련인데 카메라덕분에 그런 동물들의 모습을 그들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었다. 다큐 사진이라는 것이 따로 기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재미있었다. 배고픈 것도 졸린 것도 잊을 만큼.

Q. 이후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일하게 됐다.

운이 좋았다. 내 포트폴리오를 보고 테크닉 뿐 아니라 기다림이 담겼다는 이유로 추천을 받아 합류하게 됐다. 생태 사진은 그것이 연출한 것인지, 아니면 기다리면서 찍은 사진인지가 금방 드러난다. 내 나름대로 있는 그대로의 것, 순수한 것을 추구한 점이 그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나 싶다.

Q.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는 무엇을 배우고 경험했나?

사람이다. 몽골, 캐나다, 아르헨티나, 중국 등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왜 자신을 제한된 경험에 가두려고 하는 거지?’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자금을 모아 결혼을 하고, 나이에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전형적인 라이프사이클에 매여 있는 나 자신을 그제서야 비로소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자유를 얻었다. 그 후로는 나 자신을 한계 짓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 도전해보려고 한다. 그것이 사진이건, 금융공학이건 간에.

<Why가 이끄는 전율의 삶을 찾아서>

Q. 원래 자신에 대한 질문이 많은 사람인가?

어려서부터 늘 ‘왜?’를 묻곤 했다. 플라나리아를 반으로 자르면 왜 각각 재생되는 건지, 상처에 왜 새 살이 돋는 것인지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궁금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누가 시켜서’이면 허무하지 않겠나? 어느 날 수족관에서 펭귄을 보고 있는데 재미가 없더라. 어차피 조련사가 훈련한 대로 움직이고 있는 거니까. 진짜 펭귄의 모습이 아니지 않나.

Q.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이 있다면.

독수리를 찍은 사진이다. 독수리를 보겠다고 나무 위에 텐트를 치고 일주일 동안 씻지도 못하고 지냈다. 쉽게 포착할 수 없는 순간인 만큼 독수리의 몸짓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찌릿찌릿했다. 

Q. 지금은 금융공학을 공부하고 있다.

금융공학은 채 100년이 되지 않은 학문이다. 따라서 완성된 학문이 아니라는 점에 끌린다. 마치 생태 사진을 찍는 것처럼. 아무도 밟지 않은 설원에 발을 내딛는 기분을 혹시 아는가? 북해도에 갔을 때도 이름난 출사지가 아닌 눈을 치우는 할아버지 사진을 찍었다. 그게 북해도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금융공학도 이미 정립된 방법이 있다거나 과거의 지식을 재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도전해보고 싶었다.

Q. 앞으로도 사진은 생태 사진만을 찍을 건가?

아니다. 동물의 동적인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모든 순수한 것, 손때가 지 않은 것을 사진에 담고 싶다. 샌프란시스코에 출사를 갔던 적이 있다. 그런데 금문교는 지루했다. 모두에게 익숙한 사진을 굳이 나까지 찍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한밤에 혼자 나와 겨울 바다를 세 시간 동안 걸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지금 내게 샌프란시스코는 겨울 바다 위에 별이 뜬 밤하늘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p.s. 참고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배경이 된 사진 잡지 <라이프>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인생을 보기 위하여, 세계를 보기 위하여…(중략)...수천 킬로미터씩 떨어진 먼 곳의 일들, 벽 뒤에 방 속에 숨겨진 일들, 위험해질 일들, 남성에 의해 사랑 받는 여자들, 또 수많은 어린이들을 보자. 보고, 보는 것을 즐거워하자. 보고 또 놀라자. 보고 또 배우자.

(To see things thousands of miles away, things hidden behind walls and within rooms, things dangerous to come to…to draw closer…to see and be amazed.)" UB.


<사진 찍는 '최재혁'이 더 궁금하다면>

- 최재혁 블로그 : http://goo.gl/aXO01F
- 최재혁 페이스북 : http://goo.gl/nMY8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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