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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메마시떼, 일어 공부를 시작하다

스몰 스텝 스케치 #18.

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방법은 영어단어 외우기와 같은 방식이다.

포털 사이트가 매일 제공하는 일어 단어 다섯 개를 무조건 외우는 방법이다.

아주 오래전 배운 히라가나마저 가물가물한 수준이지만 주눅들지 않기로 했다.

단어 하나하나를 통째로 외우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때 배운 발음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1년을 반복하다보면

요즘 뜨는 일본 브랜드들에 관한 정보나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애니메이션에 관한 소식들을

현지의 책과 신문, 블로그들을 통해 직접 알 수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영어 공부도 그렇게 시작했었다.

매일 포털사이트의 단어 다섯 개를 무작정 외우는데서 시작했고

조금 익숙해지면서 간단한 회화도 곁들여 듣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TED 영상도 함께 보기 시작했다.

새롭게 찾은 팝송들은 가사를 찾아 따로 정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주일에 두 세번 보던 테드 영상의 발음들이 귀에 꽂히기 시작했다.

얽힌 실타래처럼 다가오던 발음들이

또렷히 인쇄된 텍스트처럼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 다섯 개의 단어를 학습하도록 구성된 '네이버 사전'


내친 김에 영화 한 편을 정해 자막없이 보기 시작했다.

문장 하나하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장면 하나하나의 맥락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자막없이 영화를 보기 시작하자

평소에 보이지 않던 인물들의 표정과 배경,

그들 대화의 맥락이 좀 더 생생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치 카페에서 타인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가 다가와 말을 걸어온 것처럼

그들의 대화에 온전히 빠져드는 경험은 또 새로운 것이었다.


영어 공부에 관한 온갖 지식과 방법론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새로운 단기, 속성, 비법들이 날마다 쏟아진다.

하지만 40년 가까이 그렇게 열심히 해도 뚫리지 않았던 나의 귀가

하루 다섯 개의 단어 외우기로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렇게 그 질문에 답해보려고 한다.

어쩌면 언어는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의 '필요'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고.


40년간 아이들을 가르친 이 선생님의 뜨거운 강의는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영어' 자체를 '공부'하려 들지 않았다.

매일 5개의 단어를 외우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고,

TED에 나오는 다양한 지식과 지혜, 깨달음에 열광했을 뿐이다.

'영어'라는 언어로 된 노래가 주는 매력에 빠져들었고

영화 속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에

자막없이 끼어드는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그렇게 언어가 정복과 극복의 대상이 아닌

소통의 파트너가 되면서

그 과정이 좀 더 즐거워졌다.


영화 '비포 선 라이즈'는

전혀 다른 두 세계의 사람이 같은 '언어로' 소통하는 과정이

얼마나 즐겁고 유익하며 행복한 것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두 주인공의 사랑스런 대화도 인상적이었지만

영화 중간 중간 뜬금없이 등장하던 현지인?들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특히 '밀크쉐이크'라는 주제로 즉흥시를 지어주던

그 멋진, 하지만 가난한 시인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을 이어주는 다리는 다름아닌 '영어'라는 언어였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런 소통의 도구로서의 '언어'이다.

그것은 단기, 속성, 비법으로 다다를 수 있는

'공부'와 '정복'의 대상은 아니지 않을까?


일어 단어 5개를 1년 간 매일 공부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같은 방법으로 중국어에 도전해보려 한다.

그 후에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기로 하자.

뭐 어떤가, 어차피 스몰 스텝인 것을.

그저 오늘 한 마디의 영어, 일어를 더 외우면 그만이다.

그렇도 또 1년이 지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이제 새로운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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