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카페 오랑쥬의 '충배롤'을 아시나요?

My Littlest Brands #05.

대학시절 가장 존경하던 은사는

TV 출연이 유독 잦았던 유명한 교수님이 아니었다.

학점이 후한 교수님도

엄청난 수강생을 몰고 다니던

유머러스한 교수님도 아니었다.

어떤 환경에서도 빠진 수업은 칼 같이 보강을 하고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냉정한 얼굴로

오직 '수업'에만 열중하던 여교수님이었다.

나 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

매 학기 끝마다 이어졌던 교수 평가 결과를 보고

우리가 만든 결과이면서도

우리 스스로 놀랐던 경험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 미혼의 여교수님이

어느 날인가는 자신의 소박한 꿈을 살짝 내비치셨는데

은퇴 후엔 자신만의 딸기밭이나

혹은 카페를 하고 싶다는 궁서체의 수줍은 고백이었다.

우리는 또 한 번 함께 놀랐고,

역시 교수님은 '수업'을 할 때가 가장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가장 교수님답다는 암묵적인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

딸기밭은 말할 것도 없고

카페 조차도 결코 장난이 아님을

때묻은 우리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바나의 정글이 생경하지 않은

이 살벌한 생존경쟁이

그 교수님을 포함한 많은 이들에겐

여전히 낭만의 영역으로 남아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토록 많은 카페들이

날마다 용감하게 오픈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오랑쥬_02.jpeg 대한극장 뒷골목 카페 '오랑쥬'는 이름 그대로 오렌지색으로 빛난다


카페 '오랑쥬'는 충무로역 대한극장에서

도보 3분 거리의 뒷골목에 자리잡고 있었다.

건축공학과를 나와 인테리어 일을 하던 카페 주인은

자신이 공사하던 꽃집 옆의 작은 공간을 눈여겨 본다.

그리고 카드 대출과 가족 찬스의 도움을 얻어

여러가지 과일 이름의 후보 중에서

'오랑쥬'라는 예쁜 이름의 카페를 오픈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이 작은 카페은 여전히 그 이름과 공간을 지켜내고 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런 작은 규모의 카페 하나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혹독하고 지난한 여름과 겨울을 지내왔을지.


"막 오픈 할 때는 스타벅스 하나, 커피빈 하나

그리고 다른 카페 하나가 전부였어요.

그런데 1년이 지나지 않아 카페들이 하나 둘씩 생겨났죠.

바로 맞은 편에 두 배 크기의 카페가 들어섰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격은 훨씬 싼데 맛까지 좋은

테이크아웃 커피숍이 생겨났죠.

문만 열면 바로 경쟁자인 거에요.

그 기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을 알 수가 없죠."


오랑쥬_01.jpeg 주인장이 직접 구워내는 롤케익 한 조각이 이 카페를 골목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왔다


미드 '왕좌의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이 골목 전쟁은

이제 잠시 휴지기에 접어들었다.

가게 앞 경쟁 카페는 가게 옆 테이크 아웃에 밀려

커피 외에도 관심이 많은 새로운 주인이 들어왔다.

그 전 주인은 테이크아웃 커피숍의 늘어선 줄이 보기 싫어

가게 앞 문을 가리는 블라인드를 달았다 한다.

가격이 싼데다 원두까지 남달랐던 테이크아웃 가게는

그보다 더 싼 테이크아웃 가게들의 등장으로 기세가 꺽인 상태,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이 서너 평 남짓한 작은 카페는

무슨 재주로 그 치열한 전쟁의 생존자로 남을 수있었을까?


"어느 날 단골들이 먹을거리를 찾기 시작했어요.

커피와 함께 먹을 케잌류를 찾았죠.

첫 번째 선택은 코스트코 치즈케잌이었어요.

처음엔 3000원에 팔다가 원가 때문에 500원을 올렸죠.

그러자 거짓말처럼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어요.

카페에서 팔 수 있는 케잌의 상한가를 알게 된 셈이죠.

낙담하던 차에 와이프가 제과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몇 번의 메뉴 변경 끝에 롤케잌을 팔기 시작했어요.

집에서 만든 케익은 한 롤 밖에 가져올 수 없었는데

그 11조각이 오전이 지나기 전에 다 팔리기 시작한 거에요.

점점 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도대체 무슨 케잌이길래 보기도 전에 다 팔리냐고요."


충베롤의 탄생은 이렇게 심플했다.

하지만 모든 성공에는 우연한 이유들이 존재하는 법,

도지마롤을 연상시키는 이 예쁜 크림 롤케잌에 이름이 붙으면서

이 평범한 롤 하나가 가게의 수명을 연장시키기에 이른다.

이 롤케잌의 이름은 '충배롤',

카페 단골이던 동국대 학생과 교수들이

'충배', 그러니까 '충무로 배용준'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면서

이 롤케잌 역시 '충배롤'로 불리기 시작한다.

주인 스스로야 남부끄럽다는 이유로

'충무로 베리굿롤'로 설명을 고쳐 붙였다지만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충배롤'이 이렇게 탄생했다.

가격까지 착한 이 작은 롤케익 하나가

'차별화'가 절실하던 카페 생존의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그 과정에 어떤 대단한 전술이나 전략도 없어보이지만

만일 주인이 동국대 학생들과 교수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면

아마 이런 이름도 얻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의 충배롤도 오랑쥬도 존재하지 못했을 터,

그런 사연을 듣고 주인의 얼굴을 바라보니

남자인 나도 절로 고객을 끄덕이게 된다.

언제나 차별화의 요소는 내부에 있는 법이다.


오랑쥬_05.jpeg 카페의 생명력과 내공은 손님의 포인트 카드 숫자로 측정 가능하지 않을까?


거리를 밝히던 가로등 하나 없었던 8년 전에 비해

지금의 오랑쥬 골목은 걷기 좋은 밤거리가 되었다.

주로 누가 오냐고 물으니 주인장의 답변이 비교적 상세하다.

물흐르듯 흐르는 단골에 대한 설명이 놀라울 정도로 디테일하다.


"요 근처에 아주머니들에게 소문한 파스타 맛집이 네 군데 있어요.

그 외에 다른 맛집도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1차를 마친 아주머니들이 저희 가게를 찾죠.

한 때는 대기업 사원 교육을 위한 인화원이 있었고

근처 동국대 학생들 중에도 단골이 많은 편이에요."


그 이야기를 듣고 가게 안을 훑어보니

빼곡히 꽂힌 포인트 카드들의 행렬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커피 한 잔과 부담 없는 가격의 롤케잌 한 조각,

그리고 외모는 물론 목소리까지 배용준을 연상시키는

훈남 주인과 이 작은 가게 뒤에는

아마도 8년간 이어진 밀도 높은 사연들이

의도하지 않은 브랜딩의 히스토리들을 켜켜히 쌓고 있었을 것이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원두를 고민하고, 가격을 흥정하고

무료 쿠폰의 횟수까지 경쟁하던 8년 전쟁을 지나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작은 카페 주인과의 수다 뒤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오랑쥬_04.jpeg 오랑쥬의 상징이자 차별화요소이자 아이덴티티인 충배롤은 이제 두 번째 시즌?으로 진화 중이다


얼마 전 와이프와 같은 교회를 다니는 친구 한 분이

대기업 다니는 남편의 보너스로 작은 카페를 하나 열었다.

하지만 채 삼 개월이 지나지 않아 카페는 다시 시장에 나왔다.

와이프를 통해 전해 들은 젊은 주부 사장의 푸념을 듣고 있자니

대학 시절 여교수님의 딸기밭과 카페를 향했던 순수한 동경의 표정이

20년을 훌쩍 넘긴 지금에 와서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때의 교수님은 진지했었다.

아마도 주부 사장의 결심도 진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페는 그 정도의 진지함으로는 유지할 수 없다.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뚜렷한 차별화 요소가 없다면

아무리 작은 카페도 석 달을 넘길 수 없고

결국 다음과 같은 푸념을 남긴 채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차라리 내가 카페 알바를 하는 게 낫지"


8년 가는 카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 다음 8년을 이어가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수업'에 있어서는 양보가 없었던

그 여교수님의 고집일 수도 있고,

커피를 향한 식지 않는 애정이나

사람을 향한 무한한 호기심과 애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놓쳐선 안되는 것은

그 답은 언제나 주인에게 있다는 것.

카페 '오랑쥬'의 경쟁력은 주인장의 훈훈한 외모와

사람들에게서 '별명'을 끌어낼 수 있었던 소소한 소통의 에너지,

그리고 그것이 오롯이 담길 수 있었던 작은 롤케잌 한 조각,

나는 그것이 이 작은 카페에서 찾을 수 있었던

이 카페만의 자기다움이자 경쟁력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은 컨설턴트의 조언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주인장의 치열한 고민과 시도 끝에 발견되어진 것이므로

그것은 지속가능한 생명력을 지니게 되었다고 믿는다.

바로 그것이 카페 오랑쥬의 가장 큰 차별화 요소이자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자산이라 믿는다.


우리는 그것을 '충배롤'이라 부른다.


카페를 하고 싶다면 오랑쥬로 가보라. 그리고 이 카페가 던지는 질문에 답해보라.



인터뷰이: 윤성진, '오랑쥬' 대표

인터뷰어: 박요철, 윤석장

정리: 박요철, 사진: 윤석장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신에게 '화장품'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