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관점으로 책 읽기 #01.
얼마 전 로우로우의 백팩 하나를 사기 위해 홍대까지 다녀온 적이 있다. 누구에게 말을 하진 않았어도 내 딴에는 양심의 가책을 조금 느끼고 있었다. 적지 않은 시간과 교통비를 들여가면서까지 왜 굳이 직접 매장을 찾아갔느냐에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명분이야 많다. 직접 가방의 재질을 확인해보고 들어보고 매어 본 후에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는, 사이트 속 멋진 모델의 사진만으로는 내게도 어울릴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는 그런 변명 말이다(물론 변명만은 아니다). 하지만 일단 지름신이 강림한 이후에는 2,3일은 걸릴 택배의 기다림을 인내할 자신이 없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었다. 제품을 직접 고르고 매만지고 직원과 벌이는 사소한 실랭이까지도 이 제품을 더욱 애정하게 되는 '경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그러고보니 이런 혼란은 무언가를 하나 살 때마다 반드시 거치는 통과의례가 되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음반 구매기처럼 고상한 것은 아니라 해도 말이다.
그렇다면 배송비와 절대로 더 쌀 수 없는 구조의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가서 나는 행복했을까? 합정동에 위치한 '로우로우'의 매장은 딱 기대한만큼의 매장과 서비스를 제공했다. 애초에 마음에 두었던 모델은 실제로 보니 스타일과 색상이 썩 내키지 않았다. 물론 마음에 드는 백팩은 훨씬 비쌌다. 나의 흔들리는 동공을 보고 매장의 아리따운 여직원은 같은 모델이지만 새로운 스타일의, 게다가 30% 할인까지 적용된 짙은 갈색과 오렌지 색의 백팩을 내 눈 앞에 가져다 놓았다. 사이트에서는 눈에 띄지 않던 모델이었다(신제품이라 온라인에 업로드 전이었을 수도 있겠다). 나는 약간의 망설임 끝에 백팩을 구매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부족한 수납공간에 툴툴거리면서도 지금도 잘 메고 다니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매일같이 혼란스러워하는 나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쓰여져 있다. 그만큼 감정 이입이 빠르다.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뉴욕과 서울의 시차 따위는 느낄 수 없었다. 소개되는 브랜드도 상당 부분 겹칠 뿐 아니라 생소한 오프라인의 비슷한 사례를 이곳 한국에서 찾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양한 형태의 독립 서점이 꾸준히 등장하는 모습은 생각 이상으로 유사해 신기했다. 적어도 인간의 니즈에 관한 한 국경과 인종 간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은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 리뷰는 '개봉기'이다. 완독할 때까지는 저자의 의도를 함부로 예단할 이유도 능력도 내겐 없다. 하지만 이 책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으려는 모습은 곳곳에서 보였다. 이 치열한 생태계의 생존 경쟁은 현재진행형이라 그럴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들의 재 등장이 이전의 화려한 과거로 회귀한다는 증거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이 생각했던 것만큼 오프라인을 완전히 대체해갈 거라는 생각에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회의를 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그 가운데서 묘한 균형감을 우리에게 강요한다. 수없이 많은 아날로그의 반격 사례를 접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미 대세로 기울어진 디지털 시대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류의 책이 제공하는 수없이 많은 사례와 근거들은 일종의 착시 현상을 가져다 주기 쉽다. 일종의 확증 편향의 오류랄까? 아날로그의 부상을 전제로 사람들과 사례를 만난 만큼 그 반대의 증거와 사례에 대해서는 의도치 않게 소홀했을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전제하고 읽어야 할 책이다. 하지만 그 사례가 너무도 생생하고, 그 근거가 너무나도 치밀해 보여서 당장 오프라인 서점이라도 하나 열어야 하지 않나, 앞으로 웬만한 물건은 매장에 나가 직접 사야할 것 같은 조바심이 내 속에서 꿈틀 거린다. 하지만 이 책을 나는 정가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전자책의 할인된 가격에 네이버 페이의 포인트를 더해서) 이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은 또 한 번의 반전이다. 세상은 달라졌고, 그 달라진 세상을 전제로 한 채 이 아날로그 독립 투사들의 폭탄 투척 소식을 들어야 한다. 물론 우리 조상들의 독립 투쟁은 광복으로 이어졌으나, 이 아날로그 족의 마지막 역사는 어떻게 기록될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겠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완독 내지 정독 후에 다시 얘기하기로.
p.s. 간만에 뛰어난 논픽션 작가를 만났다. 말콤 글래드웰의 마지막 저작이 실망스러웠기에 더욱 끌리는 저자다.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야겠다. 디지털 시대에 이런 돈 안되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다니. 아날로그 반란의 핵심 수괴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