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스텝 다이어리 #07.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퇴사 후 내 이름을 걸고 홍보한 제대로 된 첫 강의의 날이었다. 밤잠을 설쳤다. 강의 한 시간 전에는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났으면 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강의는 시작되었다. 40여 개의 눈이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나도록 그들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등 뒤에 식은 땀이 흐른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망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보다 마음 속 이 소리가 훨씬 더 크게 들렸다. 이를 악물고 강의를 이어갔다. 점차 몸의 긴장이 풀어졌다. 강의를 듣고 있는 사람들 중 몇몇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내 이야기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어떤 이유인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묘한 웃음을 짓는 사람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실상의 나의 첫 강의가 끝이 났다.
정신없이 명함을 주고받고 강의장을 빠져나왔다. 강의가 별 탈 없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금요일 저녁이 주는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세상이 한없이 평화롭게 느껴지는 그 순간,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강의를 주최한 쪽 이사님의 문자였다. 평소에도 까칠하기 짝이 없던 그 분의 칭찬 메시지였다. 그날 저녁은 무언가를 먹지 않았음에도 포만감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왜 이번 일은 여느 다른 일을 해냈을 때와 다른 만족감을 주는 것일까. 강의료도 없는 파일럿 강의였다. 그 평가로 인해 내 신변에 큰 변화가 있는 놀라운 도전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다른 의미의 성취감을 느낀 이유가 궁금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밤의 고민 끝에 결국 그 이유 하나를 찾아냈다.
나는 그날 ‘나도 모르던 나’를 찾아냈다. 오랫동안 숨어 있던, 그것이 내 안에 있는 줄도 몰랐고, 그것이 남들보다 조금은 나은, 차별화된 장점인지는 더더욱 모르고 있었다. 그날의 강의 만족도는 오랜 경험의 다른 강의자들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강의 경험이 거의 없는 내게는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한 결과였다. 문자를 보낸 이사님은 강의 내용 보다 내 목소리 자체를 칭찬했다. 마이크가 필요없을 만큼 또렷한 전달력에 놀라워했다. 종종 전화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그래서 만나면 실망도 크다는 농도 함께 들었지만) 목소리가 나의 장점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점은 내가 그 강의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나의 강의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느끼던 희열은 낯설지만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그것은 강의가 주는 부담감을 덮기에 충분할 만큼의 흥분을 주었다. 그 다음부터 좀 더 많은 강의 기회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성적이나 학력처럼 수치화된 정보로 나를 말하는 것은 어쩌면 쉽다. 토익 점수와 경력의 연수로 사람들에게 나를 말하는 것은 서로에게 쉬운 일이다. 하지만 15년 여의 직장생활을 돌아볼 때 그 수치와 스펙만으로 사람들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깨닫게 된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오랜 경험을 통하지 않고는 함부로 ‘사람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어쩌면 가장 모르는 대상이 자신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나 역시 MBTI를 위시한 여러 종류의 심리 검사를 받고, 내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여러가지 평가를 반복해서 들어왔다. 그런 결과를 통해 ‘알고 있던’ 나는 소심하고 수줍으며 남 앞에 자신을 드러내기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회사 연말 행사를 위해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가장 당황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길을 걸을 때나 메뉴를 정할 때도 나는 항상 사람들의 뒤에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일이 가장 힘들만큼 나는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미처 몰랐던 나도 있었다. 강의장에서 열변을 토하는 내 모습은 나 스스로에게도 생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확실히 그 사람은 다름아닌 나였다. 그게 나였다.
첫 강의는 타의에 의해 우연히 시작되었다. 그 우연한 첫 시작의 기록을 나는 ‘세줄일기’에 꼼꼼히 적어오고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의 불안과 초조는 언제나 세줄일기의 첫줄을 채우곤 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엔 전혀 다른 내용이 세줄을 채우곤 했다. 강의를 통한 교감과 성취감이 주는 만족과 희열로 가득한 기록이었다. 그 다음 번의 선택이 쉬워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강의는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나라는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엔진 중의 하나가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 경험과 자신감은 글로, 그리고 팟캐스트 방송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후의 여러 사람의 인정이 쌓이면서 새로운 내 모습이 만들어졌다. 그건 ‘나도 미처 몰랐던’ 숨은 나의 발견이었다.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무엇이든지 해보기 전엔 모른 법이라고들 많이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전혀 다른 경험으로 자신을 내모는 무모한 도전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직장은 다니는 사람은 ‘월급’에 만족하고, 내성적인 사람은 ‘독서’와 ‘영화감상’이 가장 자기다운 취미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모르는 일이다. 세상의 수많은 회사 대표 중 6,7할은 사실 ‘내성적인 보스’라고 한다. 무대 위에서 관중을 뜨겁게 달구는 모든 가수들이 외향적일거라 생각지 않는다. 그들 중 대다수는 무대를 내려오는 순간 수줍기 그지 없는 내성적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를 생각보다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러고보니 한 가지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약 20여년 전, 사회학 수업이 있던 어느 날이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여교수님의 수업 중에 원서를 읽고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입은 좀체 열리지 않았고, 한 두명이 말하는 내용도 초점을 비켜가 있었다. 그때 내 순서가 돌아왔다. 나는 평소의 나와 다르게 내 의견을 개진했고 그 답을 들은 여교수가 한 학기를 통틀어 처음으로 눈시울을 붉히며 ‘감동했다’는, 전혀 평소의 교수님 답지 않은 칭찬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후 4년 간 나는 사회학 수업 시간에 가장 인기있는 조원이 되었다. 적어도 자료만 준비하면 발표만큼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몇몇이 모인 술자리에선 쑥맥이다가도 400여 명이 모인 강당을 사로잡을 만큼의 소통 능력이 이미 내게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몰랐다. 그것이 가장 나다운 모습의 일부일 줄은. 그저 작은 재주일 뿐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이후의 직업 세계에서 나의 경쟁력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건 수치나 스펙으로 표현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자신에 대해 기록하자. 세줄일기로 나를 이끄는 힘이 무엇인지, 내가 흥분하며 탁월한 결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어디에 있는지 관찰해보자. 내가 좋아하고 만족하는 아주 사소한 것들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것은 매일 아침 이불을 개는 아주 작은 성실함에서 나올 수도 있고, 우연히 그린 그림 한 장, 무심코 잡아본 기타 줄 하나, 무심코 들른 여행지에서의 감동일 수도 있다. 그 순간의 작은 스파크 하나가 나도 몰랐던 전혀 다른 내 모습으로 인도할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이 몇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라 생각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다른 이와 차별화된 무언가가 있다고 굳게 믿는다. 굳이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발견해낸 사람과 그렇지 않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