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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강박 아니냐구요?

해뜨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6시만 넘어도 동이 터오던 여름이 지나자 6시 반이 넘어도 깜깜한 날이 계속됐다. 날씨는 추워졌다. 여유롭게 산책하던 기쁨이 사라졌다. 아침 산책을 그만 두고 그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신 산책은 따뜻한 햇살이 등을 쓰다듬는 오후의 한 때로 옮겨가기로 했다. 의지 박약이 아니냐고? 천만의 만만의 말씀이다. 그게 스몰 스텝이다. 어느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이를 악무는 자기계발과는 다른 것이다. 목표 자체를 위해 자신을 소진하는 고난의 행군과는 다른 것이다. 가장 나다운 것, 내가 좋아하는 것,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을 아주 가끔이라도 일상에서 경험하기 위함이다.


스몰스텝을 강의할 때마다 매번 똑같은 질문을 받곤 한다. 스몰 스텝을 하고, 세줄 일기를 쓰고, 스몰 스텝 플래너에 기록하는 것들이 '강박'에 의한 것은 혹 아니냐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물어 본다.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물어본다. 혹시 이 모든 것들이 강박이 아니냐고. 그리고 지난 3년을 돌이켜본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게 맞지 않거나, 즐겁지 않거나, 강박의 기미가 보이거나, 지속하기 힘든 것들은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 놓았다.


그림 그리기가 그랬다. 새롭고 놀랍고 유익한 경험이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딸도 같이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배틀도 몇 번 했다. 페이스북에 올리자 페친들이 열광했다. 딸은 자신이 그림 배틀에서 승리했음을 알리는 댓글들을 읽고 툭하면 싸움을 걸어왔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최소 하루에 30분은 투자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쉽지만 그림을 접었다. 그리고 대신 딸과 교환 일기를 썼다. 반드시 해야만 된다는 강박이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그만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한계를 벗어나는 스쿼트 대신에 팔굽혀 펴기를 했고, 운동 효과가 더욱 확실한 달리기 대신에 산책을 고집했다. 그 시간이 즐겁게 기다려지지 않는다면 스몰 스텝이 아니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강박에 의해서가 아닌, 정말로 좋아하는 것들로 일상을 채우고 싶었다.


서른 개의 스몰 스텝 중 매일 반복하는 건 스무 개를 넘지 않는다. 강박이라면 이럴 수 없다.


오해는 마시길. 세상에는 싫지만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생계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모르던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스몰 스텝은 아니다. 미들 스텝이나가 혹은 빅 스텝들이다. 나도 나름대로 내 삶에서 조금 더 큰 스텝들을 밟곤 한다. 예를 들어 글쓰기가 그렇다. 얼마전 부터 매일 하루 두 편의 글을 써내고 있다. 내가 하는 일에서 '프로'가 되기 위한 '고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랜드'에 관한 글과 '스몰 스텝'에 관한 한 편의 글들을 의무적으로 올리고 있다. 강박도 아니지만 스몰스텝도 아니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한 넘어서고 견뎌내야 할 운명 같은 것 아닐까?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런 운명과도 같은 고행의 인생길을 걸어가는데는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드라이빙 포스Driving Fore'라고 부른다. 이전에 같은 회사를 다녔던 대표님이 알려주신 멋진 표현이다. 스몰 스텝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강박'이 아닌 '드라이빙 포스'를 충전해준다. 나는 그 힘을 가지고 내 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한 새로운 에너지를 얻곤 한다. 그리고 백번을 양보해 이런 스몰 스텝에 나도 모르는 '강박'에 의한 것이라 해도, 어떤가. 내  스스로가 기분 좋은 새 힘을 얻는다면 '좋은 강박' 아닌가. 기왕 강박에 빠질 거라면 스스로 기쁘고 행복하고 즐거운 강박으로 하루를 채웠음 싶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충만한 그런 순간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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