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리뷰의 리뷰의 리뷰

8권째 세줄 일기를 시작했다. 오늘 같은 토요일 새벽이면 지난 일주일을 '리뷰'한다. 때로는 지난 노트들 중 한 권을 꺼내어 내 삶을 '리뷰'한다. 몇 줄만 읽어도 그때의 일들이 주마등(본 적 없는 등이지만)처럼 떠오른다. 여전히 그대로인 내 모습도 있고, 한 결 좋아진 모습도 있다. 그때보다 퇴보한 모습도 없진 않지만 많지 않다. 무언가를 기록하고 리뷰하는 것의 유익함은 이처럼 밋밋한 작업이다. 마음 같아서는 놀랍게 달라진 내 삶을 자랑하고 싶지만 그런 일은 인생에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오늘 밤새 내린 눈처럼, 그래서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눈처럼 소리 없이 달라지는 것이 사람이고 인생이다. 조금 시적이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이다.


스몰 스텝을 오래도록 해오고 수많은 이들에게 권하면서도 일관되게 전한 메시지가 있다. '세줄 일기만큼은 꼭 써보라'는 말이다. 하도 입이 닳도록 말해온지라 말하는 지금의 내가 새삼스럽지만, 그래도 말한다. 세줄 일기만큼은 꼭 써보시라. 쓰는데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첫 줄엔 전날 안 좋았던 일, 둘째 줄엔 좋았던 일, 세째 줄은 그날을 살아갈 각오에 대해서 각각 한 줄씩만 쓰면 오케이다. 우리 삶이 아무리 평범하다고 해도 이 세줄은 쓸 수 있다. 대단한 일을 쓸 필요는 전혀 없다. 나의 세 줄 일기엔 이혼 위기 전까지 간 와이프와의 다툼이 빼곡?하다. 작년 12월의 일기엔 심각한 재정 위기가 기록되어 있다. 매일 새벽 2시가 넘도록 딴짓을 한 후회의 기록이 가득하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진짜 가감없는 내 모습인 것을.



2018년의 첫 눈이 오는 날, 나는 다시 세줄 일기를 꺼내든다. 지난 일주일을 다시 한 번 리뷰한다. 넷플릭스, 그 중에서도 '나르코스'의 꾀임에 빠져 밤늦게 잠든 기록이 내 눈에 띈다. 그 다음날도 새벽에 일어나긴 했지만 오후가 힘들었다. 넷플릭스가 좋긴 한데 내 삶을 흔드는 건 싫다. 그래서 연장을 하지 않기로 한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러기로 했다. 뭐 이런 식이다. 대단치 않은 고민들, 결심들. 그런데 이런 기록들이 쌓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 경우엔 책 한 권을 써냈다. 수십 번의 강연을 다녔다. 때로는 인세와 강의료가 다른 수입을 넘어서기도 했다. 신기하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하물며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더 달라질 것이다. 더 나은 누군가가 충분히 될 것이다.


나는 집에 불이 나면 세줄 일기만큼은 가장 먼저 챙길 것이다. 이 노트가 10년이 쌓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10년 후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그건 10년 전의 노트를 꺼내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내일은 오늘의 내가 만드는 것이다.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내가 쌓인 존재에 다름 아니다. 하루 아침에 인생이 달라지는 일은 아주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평범하다. 많은 이들이 평범하다. 그러나 그 평범함이 눈처럼 쌓이는 순간 비범해지는 비밀을 나는 알게 되었다. 부디 당신도 그러하기를. 2018년의 첫 눈이 쌓이는 오늘 아침의 세줄 일기 리뷰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혹시 강박 아니냐구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