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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와 함께 '필사'를 합시다

글쓰기는 언제고 싫다. 어렵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도 써지지 않을 때가 있다. 써놓고 보면 개발새발일 때가 있다. 유명한 사람들은 '절필'이란 것도 한다지만. 부질없다. 뭘 쓴게 있어야 절필이라도 하지. 그래서 글쓰기 학교나 강좌 같은 것들을 믿지 않는다. 글쓰기는 고행에 가깝다. 어떻게든 펜을 들고 좌절을 딛고 나가는 방법 밖에 없다. 글은 비로소 펜을 잡고 키보드를 두드릴 때 나오는 '노가다(막노동)'과 같다. 마음이 동하여 거짓말 같이 글을 써지는 경우는 몇 달에 한 번 올까말까다. 그 시기가 잦은 사람들을 아마도 천재라고 부를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를 악물고 써야 한다. 글쓰기는 원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굳이 방법을 하나 제시하자면 '필사'를 해보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전에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을 읽고 왔다. 그의 글은 평이하다. 말로 하는 구어체라 그런지 정교한 글쓰기의 매력은 조금 떨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의 주제를 말하기 위해 그는 언제나 다른 사례를 가져와 시작한다. 고전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경험일 때도 있다. 고사성어나 외국의 뉴스일 때도 있다. 그런 사례는 언제나 조금은 흥밋거리를 갖고 있기 마련인데, 그 재미를 따라가다보면 한 번은 반전이 있다. 조금은 엉뚱하게 작금의 정치나 시사 문제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둘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짓기가 자연스러울 수록 이해도 감동도 커진다.


어쩌면 뮤즈란 그런 것일까? 내가 오늘 필사한 글은 '이국종'으로 시작해서 '박병대'로 끝나는 앵커브리핑을 읽었다. 그리고 필사했다. 소외된 이들의 목숨을 살리는 의사 이국종과, 최고의 기득권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법관의 사익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박병대 대법관의 이야기가 나란히 교차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사심'없이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심의 '종류'는 어마어마하게 달랐다. 한 사람은 정말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외면당하는 이들을 살리는 것에 힘을 쏟는 사람이었다면, 한 사람은 충분히 누릴 만큼이 권력이 있었음에도 더 완벽한 권력을 얻어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 사람임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 손석의 앵커의 신공이 등장한다. 바로 '사족'이다.



손석희는 느닷없이 개인의 경험을 이 글의 마지막에 들고 나온다. 바로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그의 스승이 했다는 말, 문과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면 법관이 되고, 이과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면 의사가 된다는 말, 그런 그들을 질투하지 말라는 말... 그는 왜 뜬금없이 개인의 이야기를 들고 나온 것일까? 그것은 이 부류의 사람들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기 때문이라는 공통점으로 귀결됐다. 그만큼 중요한 일들을 할 것이니 질투하지 말라는 말, 앞선 두 개의 사례를 '사족'으로 깔끔하게 갈무리하고 있었다. 그의 글을 필사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글쓰기의 정교함과 감동을 증폭시키는 기술들을 종종 만나기 때문이다. 물로는 그는 무심하게 쓴 듯 하지만...


이쯤 되면 나도 '생각'이란 것을 한다. 그의 스승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최고의 인재들이 그 일을 맡아야 한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조건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공부'란 것을 잘하면 좋은 의사가 되고 좋은 법관이 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란 사실을 우리는 듣고 보아서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뭐 대충 이런 식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도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되다. 그렇다. 글쓰기 어려운 이유는 이런 끊임없는 '생각'이란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고, 그것을 글로 정돈하는 작업이 퍼즐 맞추기 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막연한' 생각과 말은 존재하지만 '막연한' 글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필사를 한다. 그렇게 글쓰기와 생각에 관한 그들의 '기술'을 배운다. 그 기술은 바로 '생각'의 힘이다. 그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는 끈기와 실천이다. 내가 매일 두 개의 주제로 글을 쓰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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