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새벽 3시의 글쓰기

새벽 3시, 늦어도 4시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책상 위의 시계 화면을 찍어 '미라클 모닝'방에 인증을 한다. 사실 이 시간에 일어나도 1등은 거의 불가능하다. 세상 부지런한 사람들에 감탄하며 우선 양치부터 한다. 커피 포트에 물을 올림과 동시에 새 컵의 삼분의 일쯤을 찬 물로 채운다. 이윽고 물이 끓으면 준비된 컵에 끓는 물을 부어 미지근한 '음양탕'을 만든다. 몸무게를 잰 후 (기쁨 혹은 가벼운 실망과 함께) 책상에 앉아 브런치 화면을 띄운다. 그리고 머릿 속에 정리해둔 글감들을 마인드맵에 하나둘씩 꺼내놓는다. 몇 개의 후보군을 떠올려 본다. 어제 울산에서 있었던 스몰 스텝 강연은 어떨까? 어떻게 하면 술술 읽히는 글을 쓸 수 있는지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를 풀어볼까? 최근에 주목하고 있는 몇몇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는 건 어떨까? 머리 속에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새하얀 모니터 화면을 까만 글씨로 한 줄씩 한 줄씩 채워간다. 이렇게 서너 시간을 오롯이 쓰는 것에만 집중한다. 분명 잘 하는 일에 하루 중 가장 효율적인 시간을 쓰기로 한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삶을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그 시작이 바로 새벽 시간의 활용이었다. 내 일의 8할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글쓰기다. 두 권의 내 책과 함께 두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다음 주면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젝트도 글쓰기에 관한 것이다. 약 10여 년 이상의 글쓰기 노하우를 담아 글쓰기 강좌도 준비하는 중이다. 그러려니 선택과 집중이 자연스럽게 필요해졌다. 새벽 서너 시간에 한 두 개 정도의 글을 끝내고 나면, 마치 하루를 다 살아낸듯한 만족감이 스물스물 찾아왔다. 뿌듯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나서 한 시간 정도 달리기와 산책을 병행하는 운동을 한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다시 책상에 앉아 세 줄 일기를 쓴다. 시간은 어느 새 9시를 향하고 있다. 남들이 출근을 서두르는 시간에 나는 이미 하루 일의 절반 이상을 마무리한 상태다. 일정을 정리하고 잡다한 일들을 처리한다. 오전은 준비의 시간이다. 오후엔 주로 미팅을 하거나 서점을 찾거나 자료를 정리하며 여유롭게 보낸다. 그에 비해 저녁 시간은 아주 짧아졌다. 저녁 8시 뉴스룸이 끝날 때쯤 무거워진 눈꺼풀에 못이기는 척하며 잠을 청한다. 불면의 밤을 지새던 기억들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소설이나 단편을 쓸 때면 매일 아침, 가능하면 해가 뜨자마자 글을 씁니다. 방해할 사람도 없고, 날은 서늘하거나 춥고, 와서 글을 쓰다 보면 몸이 더워지죠. 전날 써놓은 글을 읽어봅니다. 늘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을 때 작업을 끝내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계속 써나가요. 아직도 신명이 남아 있고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는 지점까지 쓴 다음, 거기서 멈추고 다음 날까지 꾹 참고 살다가 다시 시작합니다."


- 헤밍웨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에서


헤밍웨이는 매일 일정한 양의 글을 썼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정오까지 글을 쓰고, 오후에는 0.5마일 수영을 했다. 저녁에는 바에 가서 술을 마셨다. 그는 하루에 400단어에서 700 단어 정도를 썼다. 많이 써도 1,000단어를 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짧은 글을 쓰기 위해 무려 7자루의 연필을 두 번 깎아 썼다고 한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위해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하루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를 규칙적으로 썼다. 쓸 수 있을 때 기세를 몰아 많이 써버리지 않았다. 글이 써지지 않아 쉰다든지 하면 규칙이 깨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철저하게 타임카드를 찍듯이 글을 썼다. 이들이 이렇게 한 이유는 분명하다. 글쓰기의 흐름을 지키기 위해서다. 글을 많이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한 단락을 새로이 쓰기 위해 앞선 몇 페이지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쉽고 자연스럽게 읽히는 글은 다 이유가 있다. 짧은 글도 하물려 그렇게 쓸진데 소설은 말해 무엇할까. 나 역시 지금의 이 단락을 위해 앞선 단락을 몇 번이고 읽고 있다. 그래야만 쉽게 읽히는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을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글을 심플하게 쓰기 위해서다. 필요한 것들에 시간을 쓰기로 했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다. 물론 나는 하루키도, 헤밍웨이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단순한 삶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은 어차피 마라톤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자신의 삶에 있어 '뭣이 중헌지'를 아는 사람의 삶은 심플하다. 심플한 삶을 사는 사람은 글도 심플하다. 그래서 나는 매일 브런치에 글을 쓴다. 새벽 3시에 글을 쓴다. 하루의 삶을 심플하게 바꾸어 간다. 내 글을 쓰기 위해서. 내 인생을 살기 위해서. 하루키도 헤밍웨이도 아닌 그 누구보다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 '쓰닮쓰담', 평범한 사람들이 작가로 다시 태어나는 글쓰기 오프 모임입니다 :)

(참여코드: write)


매거진의 이전글 슬프지만 슬프지 않게, 기쁘지만 기쁘지 않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