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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

숨은 브랜드 찾기 #11.

'오늘 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그가 처음 행신역 부근에 작은 빵집을 열었는데 장사가 너무 안 됐다. 그러다 가게 보증금마저 밀린 월세로 다 까먹어 가고 있던 즈음, 머리 속은 내가 빵을 만들어서 먹고 살 수는 있을까, 내가 빵을 만들어도 되는 걸까 하는 실의와 고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역 앞에 늘 보이던 노숙인이 문득 떠올라 만들어 놓은 모카빵 하나를 집어 들고 찾아가 빵을 건넸더니 바짓춤에서 동전 한 움큼을 꺼내 주더란다. 괜찮다고 사양하자, "도대체 나를 뭘로 보고!” 하며 역정을 내길래 하는 수 없이 그 동전들을 받아 가게로 돌아왔다. 다음 날, 그 노숙인이 가게로 찾아 왔다. 어제 그 빵 너무 맛있었다고. 당신에게 준 그 돈이 내 가진 전재산이었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을만큼 맛있었다고. 그는 그 말을 듣고 다시 빵을 만들 용기와 자신이 갖고 있던 빵에 대한 열정을 되찾게 되었다고 했다. 이태원 오월의 종 정웅 오너셰프의 이야기이다.'

어느 인문학자가 ‘노숙자는 자신이나 세상에 대해 마비되어 수치심을 모르는 존재’라는 글을 써 한바탕 홍역을 치뤘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맹렬히 비판했지만, 어쩌면 그의 글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홈리스에 대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아닐까?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너도 저렇게 길에 나앉게 된다’ 는 부모의 한 마디, ‘나도 길에서 먹고 잔 적이 있지만, 결국엔 이렇게 성공했다’라는 어느 정치인의 성공 스토리 등을 숱하게 접하며 우리 중 대다수는 홈리스의 삶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개인에게 지우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해왔다.

홈리스가 노숙을 하는 것이 정말 그가 게으르고 수치심을 몰라서일까? 오월의 종 정웅 오너셰프의 이야기는 마음 깊숙이 묻어 두었던 질문을 다시 되묻게 했다. 일본에서 빅이슈 재팬을 처음으로 접하고 한국에 돌아와 오직 진심 하나로 발로 뛰어 빅이슈코리아를 런칭,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빅이슈 코리아의 안병훈 편집장을 만나 빅이슈코리아의 홈리스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 이야기 출처: 커피 리브레 서필훈 대표 페이스북)


▶ 홈리스에 대한 다른 생각, 빅이슈코리아 

“흔히들 홈리스라 하면 늘 술에 절어있고 욕설을 내뱉는 부랑자를 떠올리지만, 홈리스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등산복을 입고 하루 종일 지하철이 끊길 때까지 타고 다니는 사람 등 겉으로 봐서는 전혀 티가 나지 않는 홈리스들이 훨씬 더 많다. 어제까지 사업을 하다 망한 사업가부터 일거리가 끊긴 일용직 노동자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정으로 홈리스가 된다. 실제로 홈리스 중에는 워킹 홈리스도 굉장히 많다.”

안병훈 편집장은 의도적으로 ‘노숙자, 노숙인’이라는 표현 대신 ‘홈리스’라는 영어 단어를 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숙’이라는 단어 자체에 편견을 갖고 부정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사지가 멀쩡함에도 게으르고 못 나서 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져 있지 않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한 순간의 선택이나 실수로 집을, 사람을 잃고 홀로 거리에 나앉을 수 있다.

안병훈 편집장은 홈리스에 대한 인식이 먼저 개선될 때 비로소 구성원들의 동의와 지지를 얻어 정책적 지원책이 나올 수 있다고 보았다. 빅이슈 코리아는 그 때까지 홈리스에 대한 다른 생각을 심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먹지 못 해 몸이 삭고, 씻지 못 해 냄새가 난다 해도 그가, 그녀가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였고 친구였던 ‘사람'이라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그와 처음 나눈 말 그리고 마음, 잡지 빅이슈 

“잡지 빅이슈는 하나의 매개이다. 빅이슈가 아니면 홈리스와 이삼십대 여성이 언제, 어떻게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겠나? 잡지를 사고 팔기 위해 서로 말을 걸고 잔돈을 거슬러 주는 행동, 상황 하나하나가 모여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공감하게 된다. 빅이슈 코리아는 그러한 연결의 시작점이 되고 싶다.” 

어느 시인은 사람 한 명, 한 명이 섬과 같다 했다. 도무지 살 길이 없어 길 위에서 방황하는 홈리스는 가장 멀리 혼자 동떨어져 있어 잘 보이지 않는 섬과 같다. 빨간 조끼를 입고 ‘빅이슈 코리아입니다. 신간 나왔습니다!’ 하는 빅판(빅이슈 판매원)의 외침은 드라마 속 연인의 이별에는 슬퍼하면서도 눈 앞의 홈리스의 처지에는 눈을 감고 귀를 닫았던 보통 사람들을 멈춰서게 한다. 그렇게 홈리스와 보통 사람들은 서로 말을 주고 받고 마음을 나누며 친구가 된다. 


▶자립의 기준, 집 그리고 관계망 

“집이 없는 것 뿐 아니라 관계가 단절된 사람도 홈리스다. 어느 날, 빅판 중 한 분이 만약 거리에 쓰러져서 변고가 생기면 빅이슈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도 될 것 같다고, 그래서 당신들이 참 고맙다고 하시는거다. 그 때 빅이슈 코리아의 목표가 분명해졌다. 빅판 분들이 ‘집’에 들어가 사는 것뿐 아니라 빅판 분들의 최소한의 ‘보호망'이자 '관계망’이 되고자 한다.” 

전세계 10개국, 총 14종이 발행되는 빅이슈는 기사와 이미지를 공유하는 것 외에는 저마다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그 중 빅이슈코리아에서 유독 눈에 띄는 점은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넓은 네트워크와 탄탄한 시스템이다. 고시원 입주 후 6개월 간 성실하게 판매, 매월 일정 금액 이상 꾸준히 저축하는 빅판은 주거복지재단 산하의 임대 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 주거뿐만 아니라 의료, 법률 서비스, 진로 상담 등을 분야별 전문가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가장 합리적인 비용으로 제공하고 있다.

또한 생존의 문제를 넘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홈리스월드컵, 서울 발레 시어터와 함께 하는 발레 공연, 봄날 밴드 공연 등 다양한 문화 체험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 편집샵 노킹온(구 CRACK-ER)과 함께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취지의 '빅판 가변의 법칙'을 기획, 빅판들의 메이크오버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안병훈 편집장을 인터뷰하는 내내 취업 삼수를 하는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느 화창한 날의 오후에 친구는 도무지 살래야 살 길이 없다며 사람으로 북적이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열심히 하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다’는 착하고 바른 생각은 혼자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다는 점에서 결코 착하지도, 바르지도 않다. 유니타스브랜드는 브랜드가 관계라고 믿는다. 안병훈 편집장이 자기다운 생각으로 품고 낳은 ‘빅이슈코리아’는 모두가 투명인간으로 여기던 우리 사회의 홈리스들을 ‘빅판’이라고 이름 부르며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빅판’이라는 이름을 새로 얻은 이들은 빅이슈코리아의 독자들, 발레리나, 동네 가게 주인 등 수많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손을 잡으며 비로소 ‘우리’가 되었다. 


- 빅이슈코리아 공식페이지: http://www.bigissue.kr/
- 빅이슈코리아 페이스북: facebook.com/TheBigIssue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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