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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 여인숙

브랜더's 다이어리 #03.

게스트 하우스의 방문을 열어 젖히니 대학 시절 친구 자취방을 다시 들어선 듯한 야릇한 향이 코끝에 가득하다. 모기향이 놓인 걸 보니 오늘 밤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대전의 유흥가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곳은 이름은 여인숙이지만 실제로는 게스트 하우스다. 이층 침대에 걸린 사용 설명서에 짤막한 역사가 소개되어 있다. 10년 간 방치되었던 여인숙이 이렇게 개성 넘치는 게스트 하우스로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이. 하지만 우리는 인터뷰를 거절당했다. 그간 있었을 취재 중의 상처가 짐작이 되어 굳이 간청을 하진 않았다.


류현진의 경기가 있던 전 날, 친구로부터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에 대한 설명을 잠깐 들은 적이 있다. 메이저리그에 입성하기 전의 마이너리그는 세 단계로 나눠지며, 이 단계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는 다름 아닌 식사라고. 가장 아래인 싱글 A는 훈련 후 식사가 아예 제공되지 않고, 더블 A는 식빵과 물이 제공되며, 트리플 A부터는 비로소 식사가 제공된다고. 그런데 그 식사는 직접 사먹어야 한단다. 따로 확인해보진 못했으나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을 요구받는 미국의 프로야구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경쟁에 기초한 성공과 실패로 구분되는 곳이 비단 미국의 프로야구만일까? 최근 넘쳐나는 오디션 프로들은, 어쩌면 이들 못지 않은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피곤한 자화상은 아닐까?


오늘 만난 세 분은 그런 의미에서 이 땅의 마이너리그를 대표하는 주자들이다. 많은 이들이 흠모하는 편안하고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솔직히 그렇게 매력적인 인터뷰이는 아니다. 화려한 프로필과 누구라도 알만한 브랜드 네임, 상상을 초월한 매출과 정교한 마케팅 전략 따위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댈 것은 오직 한 가지. 남들과 다른 삶을 선택하였으되, 자신의 삶과 경영에 대해 대나무처럼 곧고 소나무처럼 우직하기를. 그런데 생각이 짧았다. 설익은 지식과 어설픈 판단의 잣대로 재단치 못할 이 분들의 지혜 앞에서 그저 묵묵히 듣고, 웃고, 받아 적고, 흐뭇해 할 따름이었다.


물론 경쟁은 나쁘지 않다. 그 치열한 과정이 만들어낸 화려한 열매들이 많은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는 것도 부인치 않는다. 다만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 묵묵히 오래된 골목의 그늘진 곳을 지키는 공존의 지혜의 담백함이, 치열한 경쟁이 가져다준 성공의 달콤함보다 결코 못하지 않음을 당당하고 재미있게 말하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아! 이 행복한 불편함, 소박한 푸근함'


행복과 불편이 공존할 수 있고, 소박한 푸근함이 화려한 편안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당찬 포부가 이 게스트하우스의 사용설명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피곤한 하루였지만, 꽤나 달콤한 안식이 기대되는 그런 밤이다.


아, 저렴한 가격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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