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는 전설들이 있다. 하우스오브카드, 블랙미러, 기묘한 이야기 같은. 이른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불리는 이 미드들을, 애석하게도 정주행까진 하지 못했다. 나의 노력이 부족한 것인지, 그들의 정성이 모자랐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아무튼 그랬다. 재미있지만 끝까지 보지 못한 이유는 여러가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르코스'는 정주행했다. 시즌1을 통째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그제서야 '아, 이래서 넷플릭스'로구나 하는 탄복을 했다. 재미있게 몰입된다는데 무슨 분석이 필요하겠나. 사랑에 빠진 청춘의 흥분을 어떻게 수학 공식으로 찬찬히 설명을 하겠나.
'나르코스'는 마약상의 이야기다. 콜롬비아의 유명한 마약상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이야기를 시즌 1,2에 담아냈다. 어떻게 그들은 코카인의 유통을 통해 엄청난 부자가 되었는가. 이 한 가지 주제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하지만 묵직하다. 남미, 그중에서도 콜롬비아가 어떻게 마약으로 몰락을 경험하게 되었는지가 전방위적으로 소개되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하는 생각 말이다. 묘하게 뒤틀린 애국심을 유발한다. 법도, 정의도, 우정도 거대한 자본앞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그 가운데 주인공 파블로의 천재적인 '감'과 미국 마약단속국의 '집요함'이 매 회마다 불을 뿜는다. 할 일이 많은 나는 그래서 시즌 2는 건너뛰었다. 아니 마지막 회만 보았다. 파블로의 이상하게 애잔한 마지막을 보았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가 파블로라면 어땠을까? 천문학적인 돈은 쌓이고 쌓여서 땅에 묻어야 한다. 돈으로 매수되지 않는 적들은 수시로 제거해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마약단속국과 콜롬비아 정부의 덫은 하루가 다르게 목을 죄여온다. 그쯤해서 그만두어도 될 법한 시기는 이미 지나갔고, 오직 끝이 분명한 질주만이 그의 남은 남은 삶을 기다릴 뿐이다. 자신이 갇혀 있을 '감옥'까지 직접 만들어 들어갔던 파블로 에스코바르. 그의 놀라운 협상력과 사람과 상황을 꿰뚫어보는 안목, 그 능력을 다른 데 썼다면 그와 콜롬비아의 비극은 희극으로 바뀔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이 드라마는 '마약'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마약을 빙자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자본주의의 극단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허망하게 몰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다큐멘터리다. 한달 벌어 한달 살아가는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양날의 검 같은 판타지다. 그들은 자신들의 끝을 알면서도 달릴 수 밖에 없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를 타고 끝이 절벽인 길을 향해 내닫는다. 그 차 안에서만큼은 부와 쾌락을 한없이 누릴 수 있다지만. 어찌 인생이 그리 단순하던가. 인생의 진리가 그렇게 화려한 모습으로 치장되어 있던가.
사실 그가 바랬던 삶은 일상의 행복한 삶이었다. 그는 부하 한 사람과 홀로 숨어 다니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의 아내와 가족들의 생일 축하 노래를 무전으로 받는다. 도청의 위험이 큼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수시로 대화를 주고 받는다. 새삼 식상한 결말같은 이야기지만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작은 것'들이 아닌가. 단 잠을 깊이 자고 일어나 마시는 커피 한 잔. 아이들의 웃음 소리. 생일 축하 케이크. 친구들과의 저녁. 미드를 보며 마시는 맥주 한 잔. 뭐 그런 것들이 마약왕 파블로에게도 궁극의 삶의 목적은 아니었을지. 그렇다면 왜 그는 그렇게 뻔히 보이는 결말을 향해 달려갈 수 밖에 없었을까? 왜 일상의 '스몰스텝'들을 애써 외면하고 위험천만한 '빅스텝'에 삶을 내던져야 했던 것일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몰 스텝'을 걷는다. 파블로는 가지 않았던 나만의 길을 걷는다. '어쩔 수 없이' 내달렸던 파블로와는 전혀 다른 정반대의 길이다. 정답이 아니라 해도 괜찮다. 나는 일상은 파블로의 삶처럼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뭐... 돈이 좀 더 있다면 더 좋겠지만... 흠... 다음 달 카드값은... 어이, 파블로?
p.s. 아참, 새로운 정주행을 시작했다. 이번은 '나르코스, 멕시코'다.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