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저니스 엔드' 리뷰
우연히 어느 목사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쯤 되었을까. 동영상 속 그 목사는 한 사람을 꾸짖고 있었다. 그 꾸짖음의 대상은 이라크 무장 단체에 의해 생을 마감한 김선일씨였다. 용감하게 죽지 못했다는 날선 비판이었다. 비슷한 시기, '이탈리아인답게 죽겠다'고 마지막 유언을 남긴 어떤 사람과 비교된 탓이었을까? 순간 참담한 기분이 몰려왔다. 그리고 아무도 듣지 않을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은 대락 이랬다. '당신이 그 상황에 처했다면 무엇이 달랐을까'. 두 번째 질문은 이랬다. '하나님은 용감한 당신을 더 사랑하셨을까'. 그 후로 오랫동안 다른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약 3년 후 어느 교회의 목사와 신도들이 선교차 아프가니스탄으로 갔다. 그리고 탈레반에 의해 납치 당해 또 한 사람의 목사가 역시 목숨을 잃었다. 교회 이름은 '샘물' 교회였다. 나는 당시 그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이 영화는 1차 세계 대전의 참혹한 '참호전'을 다루고 있다. 독일군의 대공세를 코 앞에 둔 병사들의 이야기다. 만일 그 공격이 시작된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모두가 그것을 안다. 그 3일 간의 이야기가 다큐처럼 그려진다. 명확한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적응하는가, 달라지는가, 변화하는가... 이렇다할 전투 장면 하나 없는 평온한 그 사흘 동안의 일이, 거짓말처럼 빠르게, 묵직하게 다가선다. 마치 내가 그 전장에 있는 것처럼, 그들의 호흡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그리고 이런 질문에 맞딱뜨린다. 나라면 저 곳에서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으로 생의 마지막을 맞을 것인가.
이 지옥같은 곳에 장교 하나가 부대 배치를 받는다. 앳된 얼굴의 소년 같은 모습이다. 이제 막 8주간의 군사 훈련을 마친 신참이다. 그런 그가 따로 부탁을 해서 옛 친구를 찾아온다. 그 친구는 최전방에서 최고의 지휘관으로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그 장교는 자신을 찾아온 친구를 한없이 차갑게 대한다. 그리고 그를 내친 곳에서 오열한다. 왜 그 수많은 부대들 중에서 하필 이곳을 찾아왔냐고. 아무도 모르게 망가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아끼는 사람들을 더는 잃고 싶지 않아서, 절망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의 끝을 알기 때문에, 오직 술로 그 시간을 견뎌낸다. 그리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스포일러가 필요없는 뻔한 이야기다. 그 뻔한 이야기 앞에서 다양한 군상을 만난다. 죽음 앞에서 초연한 용감한 사람, 죽음의 공포 앞에서 굳어버린 사람, 그 중간의 어딘가에서 배회하는 사람...
이 영화는 금요일 밤에 볼 그런 영화가 아니다. 재미하고는 거리가 멀다.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 따위는 기대하지 마시라. 하지만 김선일 씨의 죽음을 보고 앞서 얘기한 목사와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반대로 그 말에 분노한 사람이 있다면, 인간의 죽음 앞에서 신에게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보아도 좋을 그런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사람이 있다면, 본 사람이 있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가 믿는 신이란, 인간을 긍휼히 여기는 신이라면,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이라면, 어떤 죽음도 이해하고 품어 줄 것이라는 사실을 웅변해보고 싶다. 예수는 그런 이들을 위해 이 땅에 왔다. 적어도 나는 그런 신을 믿는다.